■ 정동기 사퇴회견 현장
정동기 감사원장 내정자가 12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별관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감사원장에 내정된 지 12일 만에 사퇴한 정 내정자는 이날 정부법무공단 이사장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 “허위주장 기정사실화에 개탄”
정 내정자가 이날 발표한 사퇴문에는 ‘악의적’ ‘유린’ ‘개탄’ ‘비애’ ‘참담’ 등 억울함과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어휘가 다수 담겼다. 27년간 검사로 재직하며 말을 자제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정 내정자가 이번 사태로 큰 충격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 이날 오전 붉은 넥타이 차림으로 집을 나선 정 내정자가 기자회견장에는 검은 넥타이로 바꿔 매고 나타난 것도 불편한 심경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그는 “검찰에서 특정 대선후보에게 도움을 준 것처럼 왜곡하거나, 민정수석 재직 시 민간인 불법사찰에 관련된 것처럼 허위주장을 일삼고 이를 기정사실화하는 데 개탄을 금치 못했다”고 반박했다. 특히 민간인 사찰 사건에 대해서는 일문일답에서도 “그 사건이 지금 와서 볼 때는 크지만 당시에는 그런 사례가(각종 보고 건수가) 엄청 많았다”며 “민정수석 자리가 한가하게 사소한 사건을 보고받을 자리가 아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대검 차장에서 물러난 뒤 법무법인 ‘바른’에서 7개월간 약 7억 원을 받은 것이 ‘전관예우’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30여 년 법조 경력을 가진 변호사와 이제 막 변호사로 출발하는 사람의 급여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항변했다. 2008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합류한 뒤 법무법인 급여가 3배가량 늘었다는 지적에는 급여명세표까지 배포하면서 “퇴직 때 실적에 따른 상여금을 받았을 뿐 인수위에 가기 전과 (뒤에 급여) 차이가 없다“고 적극 해명했다.
○ “청문절차 봉쇄는 법치주의에 오점”
정 내정자는 여당에도 날을 세웠다. 그는 “공직후보자는 청문회라는 공론의 장을 통해 (각종 의혹에) 답변하는 것이 올바른 방식이기에 기다려왔다”며 “그런데 여당까지 불문곡직하고 사퇴를 촉구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이 지명한 헌법기관인 감사원장 내정자에게 청문회에 설 기회조차 박탈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직면했다”며 “청문 절차를 정치행위로 봉쇄한 일련의 과정은 살아있는 법을 정치로 폐지한 것으로 법치주의에 커다란 오점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 내정자의 발언은 지금까지 국무총리, 국무위원에서 낙마한 후보자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강한 톤이었다. 지난해 8·8 개각 당시 중도 사퇴했던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의 경우 각종 의혹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면서도 “모든 것이 내 부덕의 소치”라고 몸을 낮췄다.
정 내정자는 사무실을 나서면서 “홀가분하다. 집착을 떨쳐버리면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또 김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충분히 말할 기회가 있었지만 정 내정자의 경우 청문회를 하기도 전에 자진사퇴를 강요받는 모양새가 된 만큼 서운함의 정도가 훨씬 더 컸을 것으로 보인다. 사퇴문은 전적으로 정 내정자가 작성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정 내정자는 “오늘 새벽에 (사퇴문을) 썼다”며 “사퇴는 스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정 내정자는 이날 오후 정부법무공단 이사장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그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 정부법무공단 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공직에 적합하지 않은 처신을 한 적도 없고 제기된 의혹도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떠나게 돼 안타깝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울먹이며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