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 60년 동고동락… 현역배우 백성희-장민호 씨자신들 이름 딴 ‘백성희장민호 극장’ 3월 개관작 구슬땀
《하얗게 쌓인 눈을 소복이 덮어쓴 빨간색 극장은 동화책에서 막 빠져나온 듯했다. 그리고 ‘눈의 여왕’과 약속이나 한 듯 하얀색 간판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백성희장민호극장’. 그 앞에 국립극단의 살아있는 역사라 할 수 있는 두 배우가 나란히 섰다. 국립극단 창단멤버인 백성희 씨(86)와 몇 개월 뒤 국립극단에 합류해 동고동락하며 60여 년간 국립극단을 지켜온 장민호 씨(87)다. 지난해 환갑을 맞아 재단법인으로 새롭게 출범한 국립극단은 옛 기무사 수송대 자리인 서울 용산구 서계동 열린문화공간에 새 둥지를 마련했다. 백성희장민호 극장은 이 공간을 구성하는 3개 건물 중 하나다.》
4일 그렇게 극장 앞에 서 있는 두 배우를 보니 절로 장승이 떠올랐다. 국립극단의 둥지 어귀를 지키면서 한국연극계의 보호막이 되고 버팀돌이 되어 달라는 연극계 후배들의 염원 같은 것이 느껴져서다. 27일 현판식에 참석한 후배 배우들이 눈물을 훔쳤다는 심정이 이해됐다.
“저희 이름 붙은 극장, 많이 찾아주세요.” 올해 3월 개관할 ‘백성희장민호 극장’ 앞에 선 두 노배우의 표정이 이른 봄날 햇살처럼 환하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지난 60여 년간 문화는 항상 정치와 경제에 길을 비켜줘야 했어요. 그래서 문화선진국들은 몇백 년 전부터 해온 것을 우리는 이제야 시작하는 셈이죠. 몇 년 전 프랑스 파리에 갔을 때 배우이자 연출가였던 루이 주베(1887∼1951)기념관에서 관객이 셋밖에 안되는데도 그의 연기를 담은 흑백필름을 계속 틀어주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저희에 앞서 더 훌륭한 선배님들 이름을 딴 극장부터 만들어져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백성희)
두 배우가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이유는 단지 생존해 있다는 이유만이 아니다. 이들은 지금도 현역배우로 계속 무대에 서고 있다. 백성희장민호 극장의 3월 개관작으로 준비 중인 ‘3월의 눈’은 오래된 한옥을 지키고 사는 노부부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이다. 배삼식 작가가 쓴 희곡을 토대로 국립극단 예술감독인 손진책 씨가 직접 연출을 맡는다. 이 작품을 연습 중인 두 사람은 팔순의 나이에도 대사 한 번 까먹는 법 없고, 발성도 젊은 배우 뺨치게 낭랑하다.
“1943년 현대극장의 ‘봉선화’로 데뷔하기 1년 전에 빅터무용연구소에서 무용을 배우면서 신체 유연성을 키우는 것과 발성법을 배운 게 제 평생 연기의 기초가 됐어요. 다들 제 건강유지법을 궁금해 하는데 그 당시 배운 맨손체조와 스트레칭을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해온 게 다예요.”(백)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