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에 많으면 8개씩 송년모임을 간다는 한나라당의 A 의원은 30일 기자에게 “솔직히 환영받지 못하는 줄 알면서 간다”며 “정치인을 누가 좋아하느냐. 왜 싫으냐고 물으면 그냥 싫다고 한다”고 푸념했다.
국민들이 아무 이유 없이 정치인을 싫어할까.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어제 한 얘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편리한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지만 국민들은 이를 “뻔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여야가 바뀌면 이런 증상은 극에 달한다.
광고 로드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에 대한 논평이다. 한나라당의 논평 같지만 실은 2007년 7월 현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이 낸 논평이다.
이런 낯 뜨거운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KBS의 수신료 인상 문제는 여야가 정확히 똑같은 논리로 공수(攻守)만 바꿨다. 2007년 KBS의 편파성을 이유로 수신료 인상에 반대한 한나라당은 3년이 지난 올해 KBS의 디지털방송 전환 재원 마련과 난시청 해소 등 공익적 기능 수행을 위해 수신료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의 주장은 반대로 바뀌었다.
민주당이 법안 통과 다음 날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악법’이라며 규탄대회를 열고 폐지법안을 낸 ‘서울대 법인화법’은 실은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부터 추진돼온 것이다.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판한 일간지 칼럼니스트에 대해 “옛날 같으면 구속됐을 것”이라고 말했던 민주당 천정배 의원이 연일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독설을 퍼붓는 것도 한국 정치의 수준을 그대로 대변한다.
광고 로드중
정당의 존재 이유는 정권을 잡는 것이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념과 정책을 구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국민들은 헷갈린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한국 정당에 왜 표를 줘야 하는지, 표를 주면 뭐가 달라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여야가 새해에는 좋은 정치가 무엇인지를 말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줬으면 한다.
이재명 정치부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