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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칼럼/안현진]살아남은 죽은 자들…좀비의 대습격 ‘워킹데드’

입력 | 2010-12-06 10:32:54


뉴욕의 브루클린 다리, 런던의 빅벤 등 유명 랜드마크에 좀비로 분장한 사람들이 출몰했던 이벤트. 전세계 120개국에서 거의 동시에 방영을 시작하는 TV시리즈 '워킹 데드'의 홍보를 목적으로 기획됐다.


2010년 10월26일, 전 세계 26개 주요도시에 '걸어 다니는 시체들'(Walking Dead)이 출몰했다.

뉴욕 브루클린 다리, 런던 빅벤 등의 랜드마크에 좀비로 분장한 사람들이 휘청거리는 모습으로 등장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이 현장을 포착한 사진들은 인터넷 공간을 도배했다.

타이완 타이페이를 시작으로 시간대가 각기 다른 도시들에서 24시간 동안 순차적으로 벌어진 이 이벤트는 TV시리즈 '워킹 데드(The Walking Dead)'의 프리미어를 홍보하려는 깜짝쇼였다.

미국 케이블 채널 AMC을 통해 할로윈(10월31일)밤 첫 선을 보인 이 시리즈는 며칠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120개국에서 거의 동시에 데뷔했다.

좀비 이벤트가 화제가 된 덕분인지 '워킹 데드'는 방영되는 케이블 채널이 유료임에도 불구, 파일럿 방영 당시 무려 530만 명의 시청자를 TV앞으로 불러 모았다.

이는 AMC채널 역사상 파일럿 프로그램 최고 시청자수를 경신하는 수치다. 또 에피소드 5편이 방영된 현재까지도 '워킹 데드'는 편당 550만 명의 시청자수를 유지하고 있다.

▶ 코마에서 깨어난 남자, 지옥을 만나다

주인공 릭 그라임스는 보안관이었던 남자. 코마에서 깨어나 걸어다니는 시체들의 세상과 만난다. 어디엔가 아들과 부인이 살아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말을 타고 애틀랜타로 떠난다.


'워킹 데드'는 보안관 복장을 한 남자가 시체들이 널브러진 폐허에서 자동차에 넣을 기름을 찾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생명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 남자의 눈에 어린 여자아이의 지친 뒷모습이 들어온다.

인형을 팔에 든 잠옷차림의 아이는 남자가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는데, 얼굴이 반 이상 썩은 좀비다. 인육을 탐하는 본능 탓에, 좀비 소녀는 방향을 바꾸어 남자 쪽으로 걸어오고, 남자는 망설이지 않고 총을 꺼내 이마를 명중시킨다.

이 남자의 이름은 릭 그라임스(앤드류 링컨 분. 한국에는 '러브 액츄얼리'에서 키이라 나이틀리에게 스케치북으로 사랑을 고백한 캐릭터로 유명해진 배우)다. 조지아 주의 보안관이었던 릭은 작전 중 총격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깨어난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좀비들의 습격으로 폐허가 된 고향….

길에는 시체가 쌓여있고 가족은 모두 사라진, 악몽 같은 현실이 꿈이기를 바라며 바닥에 머리를 부딪혀보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릭은 무기를 챙겨 부인과 아들을 찾아 질병재해본부가 피난처를 제공했다고 소문이 도는 애틀랜타로 떠난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애틀랜타에 도착한 릭이 발견한 사실은 그곳이 죽은 자들에게 점령당한 또 하나의 폐허라는 사실이다. 굶주린 좀비들을 피해 도망 다니던 그는 생존자 중 한명인 글렌(스티븐 연)을 만난다. 알고 보니 세상에 릭 혼자 남겨진 것은 아니었다.

소문을 믿고 애틀랜타로 모여들었다가 흩어진 사람들이 근교에 캠프를 차리고 힘을 모아 좀비들로부터 자신과 가족들을 지켜나가고 있었다. 인터넷, 전화는 물론 전기, 전화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편의가 사라진 묵시록적 상황에서 사람들은 물고기를 잡고, 사슴을 사냥하며, 호수에서 빨래를 하고 모닥불을 피운다.

이렇게 '워킹 데드'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연명을 그린다. 도덕과 규범에 앞서 본능과 생존이 꿈틀거리는 세상은, 예상대로 거칠고 무자비하다. 화폐는 휴지조각이 됐고 금은 돌덩어리에 불과하다. 총을 가진 자가 권력을 갖고, 약탈과 폭력이 횡행한다. 세상의 종말이 설마 이런 모습은 아니겠지 고개를 젓다가도, 인간사의 부정적인 면이 극대화된 세상을 보는 듯해 눈살이 찌푸려진다.

결국 생존자들은 죽은 자들과 싸우며 동시에 살아남은 자들과의 싸움에서도 이겨야만 하는 것이다.

▶ 좀비는 설정일 뿐, 결국은 휴먼스토리

'워킹 데드'는 이제껏 TV에서 보기 힘들었던 디테일과 특수효과로 좀비들이 점령한 묵시록적 상황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물리면 끝이야. 죽기 전까지 고열에 시달리지. 그 열 때문에 죽는지도 몰라. 하지만 그 다음에 다시 살아날 때는 살아있는 게 아니야."

병원에서 나온 지 얼마 안돼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던 릭에게 생존자 중 한명이 들려준 이야기다. '워킹 데드'는 이 좀비들이 언제 어디서 출현해서 이토록 급속도로 퍼져나갔는지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상황은 벌어졌고 그 상황을 타개해나가는 것이 주인공들의 몫이다.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좀비의 머리를 쏘거나 깨부수는 건데 좀비는 이미 죽은 자라는 공감대 때문인지, 좀비가 된 시체의 머리와 몸통을 끊고 다가오는 좀비들에게 총을 쏘고, 곡괭이로 머리를 부수는 등의 잔혹한 폭력 장면이 이상하리만치 덜 잔인하게 느껴진다.

그만큼 폭력의 수위는 높고, 특수효과 및 분장이 생생하다. 아마 TV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디테일과 최고의 고어(gore)를 상상해도 좋을 것이다. '워킹 데드'는 시즌1이 시작하기도 전에 시즌2까지 AMC에서 선(先)주문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시청률에 칼 같이 반응해 시즌의 생사를 결정하는 미국의 TV네트워크 시장에서는 보기 드문 사례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원작은 2003년부터 월간으로 연재해온 동명의 코믹스인데, 코믹스 '워킹 데드'의 스토리를 담당하는 로버트 커크만과 '쇼생크 탈출' '그린 마일'을 만든 감독 프랭크 다라본트, '에일리언' '아마겟돈' '터미네이터' 등 인류 최후의 날들을 그린 영화들을 제작해온 게일 앤 허드 등 내로라하는 장르의 명사들이 TV시리즈의 제작자로 승선해 역시 화제가 됐다. 특히 다라본트는 시즌1의 첫 6개 에피소드 모두의 각본과 연출을 담당했다.

"좀비 영화의 끝은 항상 비슷비슷했다. 등장인물의 대부분이 죽거나, 모두 죽거나, 살아남은 한 사람이 있다면 노을이 지는 석양을 등지고 사라진다. 그걸 보고 있을 때면 상영시간이 다 됐으니 이제 마무리해야겠다는 느낌? 늘 그 사이에 더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워킹 데드'의 창작자 커크만의 말대로 '워킹 데드'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28일 후…' '나는 전설이다' '좀비랜드' 등의 할리우드 좀비영화들이 그려냈던 아비규환의 폐허와 휘청거리는 시체들 사이에서 간과됐던 이야기를 들춰낸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많은 사회적 가치들이 무너진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하고 또 그 결정은 어떤 파국으로 모두를 몰아갈 것인가? 결국 다라본트의 "좀비라는 설정은 케이크 위에 얹힌 장식일 뿐이다. '워킹 데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라는 이야기는 커크만의 말과 한 점에서 만난다.

▶ 뱀파이어 장르에 질리기 시작한 당신에게


원작 코믹스가 이미 78권까지 출판되어 내용 중 상당한 부분이 스포일러로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 '워킹 데드'의 예상된 약점이었지만 제작진은 TV와 시청자,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최근 미디어의 네트워크 지향적 성향을 십분 활용해 재미있는 마케팅 전략을 내놓았다.

TV시리즈로 방영된 한 장면에서 숨겨진 단어를 찾아낸 뒤 다음 날 정해진 시간까지 프로그램 웹사이트에 입력하면 추첨을 통해 당첨된 사람을 촬영장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그는 좀비로 분장돼 TV에피소드에 출연하게 된다.

필자는 에피소드가 방영되는 동안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던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숨겨진 단어'들은 survival (생존), hungry (배고픈), fever (열), epidemic (유행병), cadaver (시체) 등 TV시리즈의 플롯과 관련된 단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원작이 이미 알려져 있다는 것 외에도 '워킹 데드'의 약점은 몇 가지 더 있다. 좀비라는 장르가 소수에게는 인기가 있을지 몰라도, 전파를 통해 대중을 대상으로 방영하는 것은 도박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또 '트와일라잇' '트루 블러드' '뱀파이어 다이어리' 등으로 이어진 뱀파이어 장르와 달리 좀비는 말도 없고, 사람을 현혹하지도 않는 등 이야기 속에서 장애물로 존재할 수는 있어도 캐릭터로 존재할 수는 없다는 한계도 지적됐다.

뉴욕타임스의 필자 알렉산드리아 스탠리는 이를 두고 "뱀파이어는 금성(여자)에서, 좀비는 화성(남자)에서 왔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이니, 좀비 장르와 뱀파이어 장르를 두고 남성 시청자와 여성 시청자가 양분될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걱정이었다. 또 화제만큼 실제 시청률은 높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다행스럽게도 현재까지의 시청률은 그 걱정들이 기우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다라본트가 연출한 에피소드 6편까지만 이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는 또 다른 예상이 들려오는 중이다.

따라서 시즌1이 채 절반에 이르지 못한 '워킹 데드'의 운명은 좀 더 냉정하게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안현진 잡식성 미드 마니아 joey04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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