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지사와 이 지사가 이런 내용의 결의에 흔쾌히 동의했는지, 아니면 마지못해 동참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박 지사가 “운하에는 반대하지만 영산강을 살려야 하는 것은 지역민의 현안이기 때문에 중앙당, 전문가, 전남도가 함께하는 영산강미래위원회를 만들어 지혜를 마련하겠다”고 말한 것을 보면 당의 결의를 썩 내켜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결의문대로라면 진의와 상관없이 박 지사도, 이 지사도 이제 공식적으로는 ‘4대강 반대파’로 분류될 수밖에 없게 됐다.
민주당은 6·2지방선거에서 인천 충북 충남 전북 전남 광주 강원 7곳에서 광역단체장을 배출했다. 이들 시도지사는 거대 여당 및 이명박 정부에 맞서는 소수 야당에 큰 힘이 되는 원군일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당 지도부와 소속 시도지사 간의 상시적 만남은 생각지도 않았다. ‘야당이 지방정부를 중앙정치에 예속시키려 한다’는 비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맙게도 한나라당이 먼저 당 소속 시도지사를 당 회의에 끌어들이는 선례를 만들어주는 바람에 아무 거리낌 없이 이번에 최고위원-시도지사 연석회의를 마련한 것이다.
정당정치가 정착된 민주국가에서 정당과 소속 시도지사 간의 연계는 당연하다. 그러나 지방정부는 정당과는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중앙정부와의 관계도 신경써야 하고, 지역 형편도 고려해야 하며, 지역민과 관할 시군의 의견도 살펴야 한다. 때로는 지방의회 내의 야당과도 타협해야 한다. 시도지사의 소신과 자율이 필요한 이유다.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중앙당과 ‘정치코드’를 맞추라고 강요하는 것은 지방행정의 독자성을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처럼 정당 간 정파주의가 극심한 나라에서 지자체가 정당의 대리전에 뛰어들면 국가와 국민 모두가 불행해지기 쉽다. 4대강 사업에서 이미 그런 불길한 조짐을 보고 있다.
박 지사는 그동안 민주당 당론과는 상관없이 영산강 살리기에 소신을 보여 왔다. 같은 당의 김완주 전북지사는 새만금 사업 본격 추진에 대해 이 대통령에게 ‘큰절을 올린다’는 감사편지를 쓴 적이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박 지사나 김 지사 같은 사람이 더 나오기 어렵게 된다. 이런 현실은 민생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