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연상되는 장면이 있다. 시험장 밖에서 시험을 보러 가는 선배들을 위해 열띤 응원을 하는 후배들의 야무진 모습, 늦은 수험생을 오토바이에 태우고 달려가는 경찰관의 믿음직한 모습…. 가슴이 훈훈해지는 한국 특유의 수능 장면이다.
소문처럼 치맛바람 거센 음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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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녀를 향한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지원과 희생정신으로 대변되는 교육열은 부작용도 많다. 특히 내가 활동하는 예능 계열에서 한국 어머니들의 교육열은 평균 이상이다. 어머니가 악기를 들고 자녀를 매니저처럼 수행하는 모습은 예능계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해외 콩쿠르에서도 한국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가장 크다. 외국 학부모는 대기실에서 조용히 순서를 기다리는 반면 한국 어머니는 시험 직전까지 연습을 시키면서 목청을 높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중학교 1학년 당시 학교 음악회 때의 일이다. 바이올린을 전공한 동급생이 발표회에서 평소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친구가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어머니가 다가갔다. 곁에서 지켜보던 나는 ‘위로하려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다짜고짜 친구의 뺨을 후려치면서 말했다. “내가 너 때문에 창피해서 못 살겠다!” 이 일은 아직까지도 충격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다.
미국에서 음악학교를 다닐 때 역시 한국 어머니의 치맛바람은 굉장했다. 추수감사절 선물로 많은 학생은 학교에 과일 몇 개를 들고 가거나 교수에게 감사 카드를 준다. 하지만 일부 한국 어머니는 도자기나 자개제품 같은 선물을 교수에게 건넸다. 한국 어머니가 정해진 레슨비보다 웃돈을 얹어 주는 게 사실상의 관행처럼 굳어지면서 한국 학생에 대한 레슨비가 치솟기도 했다.
잡초처럼 키워주신 어머니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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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이 돌아가면서 나를 대회장에 데려가 주었다. 심지어 미국 음악학교에 시험 보러 가는 날에도 어머니는 따라오지 않았다. 친구들이 여러 가족의 응원을 받으며 시험을 보는 모습과 비교되는 나머지 울면서 어머니에게 전화한 기억도 있다. 그렇게 본 시험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합격증을 받았다.
반면 어머니는 내가 자신 없는 과목이었던 수학 과학에서 30점대 점수를 받아도 “모든 걸 다 잘하는 사람이 있냐”고 응원했다. 또 “임형주는 전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다. 남이 간다고 무조건 똑같이 따라다니지 마라”고 했다. 여러 분야에서 ‘최연소’ 기록을 다시 쓰면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이처럼 ‘잡초’처럼 교육받은 덕분이 아닌가 싶다.
한국은 꾸준하게 국제 콩쿠르를 석권하고 세계 유명 공연장에서 성공적으로 공연 혹은 협연을 하는 등 황금기를 맞고 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버금가는 클래식 대국 20개국(C20)을 꼽는다면 한국 역시 핵심 일원에 든다고 확신한다. 이런 성취의 배경에는 어머니들의 피나는 노력이 큰 공헌을 했다. 하지만 창조성이 가장 중요한 예술 분야에서 연습기계가 되는 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스스로를 뛰어넘을 수 있는 자율적 강인함이 중요하다.
요즘 대다수 어머니는 이구동성으로 자녀가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글로벌 리더가 되기를 원한다고들 한다. 글로벌 리더란 말 그대로 자신이 몸담은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최고 레벨의 사람과 어깨를 겨누고 일하는 사람이라는 포괄적 의미를 담는다. 글로벌 리더란 관리된 학력과 스펙으로 도배된 이력서를 가진 사람이 얻을 수 있는 특혜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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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주 팝페라테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