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경영대학원 토머스 디롱 교수 수업 지상중계
토머스 디롱 교수
더욱이 청 씨는 종종 리어리 지점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 리어리 지점장은 청 씨에게 잠재고객에게 콜드 콜(cold call·영업직원들이 사전 동의를 얻지 않고 불시에 고객에게 전화하는 행동으로 고객들이 싸늘하게 반응할 때가 많다는 점에서 유래한 단어)을 해보라고 했지만 이를 무시했다. 오히려 대만계 고객은 전화보다 점심을 같이하는 걸 더 좋아한다는 이유였다. 실제로 그는 고객과의 점심에 몇 시간을 소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청 씨는 리어리 지점장에게 “개인사무실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지점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도 아직 개인사무실이 없다. 리어리 지점장은 “다른 직원과의 형평성 때문에 사무실을 내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자 청 씨는 “사무실을 내주면 더 많은 고객을 데려오겠다”며 재차 요청했다. 당신이 리어리 지점장이라면 청 씨에게 사무실을 내주겠는가?
이는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HBS) 토머스 디롱 교수의 ‘리더십과 조직행동’ 수업에서 나온 사례다. 모건스탠리의 최고인사책임자 출신인 디롱 교수는 인간과 사회심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자극하고, 활발한 토론을 유도한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는 세계 유수의 경영대학원 재학생들이 직접 현장 소식을 전하는 ‘MBA통신’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 재학 중인 안찬호 씨가 DBR 69호(11월15일 발간)에 소개한 수업내용의 일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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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롱 교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교실을 울린다. 오늘은 동료학생 크리스가 교수로부터 콜드 콜을 받았다. 수업시간의 콜드 콜은 교수가 90명의 수강생 중 무작위로 한 명을 뽑아 그에게 긴 발표를 맡기는 방식. 익숙할 때가 됐는데도 언제나 떨린다. 혹시 그 학생이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다음 타깃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서다. 다행히 크리스는 청산유수로 말을 이어갔다.
“저라면 절대 사무실을 내주지 않겠습니다. 첫째, 청 씨가 다른 직원에 비해 더 나은 성과를 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아직 고객을 한 명밖에 데려오지 않았습니다. 그것만으로는 그가 영업력이 뛰어난지, 운이 좋았는지를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둘째, 청 씨는 조직문화에 잘 융화하지 못했습니다. 그에게 사무실을 내준다면 다른 직원들의 업무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셋째, 지점장의 권한에 도전하는 부하직원에게 순순히 사무실을 내준다면 리더십에도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모건스탠리의 최고인사책임자 출신인 토머스 디롱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수업은 학생들을 자극하고 활발한 토론을 유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인간과 사회 심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전달한다. DBR 그래픽
“동의합니다. 과거 청 씨가 보여준 행동은 비정상적일 때가 많았습니다. 상사의 권위에 도전했고, 여비서의 간단한 요청을 무시하는 등 여성에게 적대감을 드러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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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리어리 지점장이었다면 청 씨는 사무실을 얻지 못했겠네요. 청 씨에게 사무실을 내주어야 한다는 의견은 없나요?”
갑자기 교실이 조용해졌다. 청 씨에게 불리한 내용만 오가다 보니 그에게 사무실을 내주는 일도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모두 망각하고 있었다.
필자는 ‘이 기회에 발표 한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손을 번쩍 들었다.
“모두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청 씨가 과연 자신을 위해 사무실을 달라고 했느냐는 점입니다. 청 씨는 리어리 지점장이 사무실을 내주면 더 많은 클라이언트를 데려오겠다고 했습니다. 아시아에서 일한 경험에 비춰보면 개인사무실은 클라이언트에게 회사 내 입지나 위상을 알리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이 관점에서 VIP 고객을 끌어오기 위해 사무실이 필요하다는 청 씨의 요청은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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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동의합니다. 유교사상이 강한 아시아 국가에서 나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청 씨는 41세로 지점장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그에게 젊은 여비서가 일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건 오만불손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디롱 교수의 표정이 ‘이제야 내가 기대했던 토론이 이뤄지는구나’로 바뀌었다.
“좋아요. 그럼 한번 상황을 달리 해보죠. 마이클, 자네는 리어리 지점장이 되는 거야. 제레미는 청 씨의 역할을 하게. 여러분, 이 두 사람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나 봅시다.”
마이클과 제레미는 졸지에 상황극의 주인공이 돼 각자 왜 사무실을 내줄 수 없는지, 왜 사무실을 얻어야 하는지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교실 내 88명의 학생과 교수는 이를 낱낱이 지켜봤다.
상황극이 끝난 후 디롱 교수는 케이스의 실제 결론을 설명했다. 결국 리어리 지점장은 청 씨에게 사무실을 내주지 않았다. 청 씨는 자신이 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는 회사에서 일할 수 없다며 사표를 냈다. 리어리 지점장은 청 씨와 같은 대만계 미국인 직원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적당한 인물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디롱 교수가 말했다.
“여러분, 이 케이스가 어떻게 결론이 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여러분이 졸업 후 청 씨나 리어리 지점장처럼 문화적 인종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들과 어떻게 융화하며 소통할지 지금부터 미리 익혀둬야 합니다. 아시아에서 살지 않았다면 청 씨가 오만하고 여성을 차별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게 선입견일 수 있습니다. 진정한 리더가 되려면 그 선입견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우리는 완벽한 인간이 아닙니다.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교수의 말이 끝나자 우렁찬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찬호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Class of 2012 cahn@mba2012.hbs.edu
정리=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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