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도입하는 융합형 과학에서는 우주 자연 생명에 대한 현대과학적 해석과 인류 문명에 대한 현대기술의 기여를 융합적 시각으로 소개한다. 학생이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의문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목표다. 위계적 개념 교육으로 나무를 이해시키는 교육은 심화교육에 맡기고 융합형 교육에서는 현대과학과 기술로 만들어진 숲을 살펴보는 능력을 길러주겠다는 취지다.
융합형 과학은 7차 교육과정의 심각한 문제가 드러난 지난 10여 년 동안 과학계와 과학교육계가 힘을 모아 준비해 왔던 역작(力作)이다. 화학회 물리학회 생물과학협회 과학교육학회와 현장의 미래지향적 교사가 모두 참여했다. 교육재생사업을 추진해 왔던 일본의 화학회도 우리의 이런 노력과 성과에 감탄한다. 융합형 과학의 등장으로 수학계에서도 ‘이산(離散)수학’, ‘미분과 통계기본’, ‘적분과 통계’ 같은 황당한 교육과정을 융합형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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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형 과학에 대한 일부 교육학자의 비판은 과학교육의 이런 절박한 현실을 무시한 것이다. 융합형 과학이 과학 개념의 위계를 지나치게 무시했다는 지적은 융합형 과학의 정체를 무시한 것이다. 교사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핑계도 어설프다. 똑같은 이유로 1960년대의 개혁을 무산시키고 과거로 돌아가 버린 미국 교육계의 경쟁력은 오늘날 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추락해 버렸다.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명백한 역사적 교훈이다. 더욱이 대부분의 학생이 외면해 버릴 정도로 비효율적인 우리의 현재 과학교육은 다시 돌아갈 ‘구관(舊官)’이 될 수 없다.
교과서 집필자가 교육과정의 목표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출판사와 저자들에게 지극히 모욕적이다. 분과적 개념 설명을 넘어서는 과학교과서의 집필이 가능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음이 사실이다. ‘모델 교과서’를 제작하고 출판사와의 소통에 애를 썼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 결과 6개 출판사와 유능한 과학교육학자가 융합형 과학의 교과서 집필을 마무리하고 있다.
교육과정 개편에 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교육과정 개편에 신중해야 하고 교사를 위한 교육당국의 노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은 옳다. 그러나 그런 지적이 그동안 과학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애써 왔던 과학계와 과학교육계의 노력을 폄하하는 방향이어서는 안 된다. 교육당국이 교육학자와 국민에게 융합형 과학의 중요성과 가치를 알리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 화학 과학커뮤니케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