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소비의 심리와 저변 훼손
하지만 작은 충격에도 흔들리는 우리 문화의 저변을 고려한다면 쉽게 결론 내릴 문제는 아니다. 한국 영화 가운데 10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작품은 5편에 이른다. 반갑기는 하지만 인구 5000만 명의 나라에서 이처럼 많은 국민이 한꺼번에 같은 영화에 몰리는 일 자체는 정상이 아니다. 어느 영화가 일단 화제를 모으면 우르르 달려가 보지만 평소에는 영화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문화를 고정적으로 소비해주는 기반이 취약한 것이다. 한국 문화는 그때그때 국민 심리에 따라 들썩거리기도 하고 한순간에 위축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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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영국의 급속한 종교 쇠퇴는 한국 종교계 내부에서도 타산지석(他山之石)의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영국 인구 6180만 명 가운데 교회 출석 인구는 250만 명에 그치고 있다. 신도 감소로 운영난에 빠진 교회가 속속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카페와 술집이 들어서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럽에서 종교에 무관심해지는 경향이 경제 수준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분석한다. 종교 활동은 저개발 국가 등 어렵고 절박한 지역에서 활발해지는 반면 물질적으로 풍족한 곳에서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종교가 밀려난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문화 소비와 여가 활동이다. 프랑스에서 문화는 흔히 ‘세속 종교’로 불린다. 사람들이 과거 종교에 몰두하던 것처럼 문화에 큰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 종교도 2000년 이후 일부 종교를 제외하고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종교계에서는 비관적 전망이 나온다. 우리도 종교 신도나 교인 수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종교적으로는 큰 위기이지만 문화적으로는 기회이자 정부도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 대비해야 할 시기를 맞고 있다.
‘물꼬’ 터주는 정책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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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문화적 욕구와 수요는 점차 커지고 있다. 케이블TV 프로그램 ‘슈퍼스타 K’에 대한 열광적 반응은 몇 가지 사회적 의미와 함께 대중문화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세련되고 고급한 문화를 포함한 문화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는 일반 국민이 어릴 적부터 문화를 이해하고 감상하는 능력을 길러야 하는 등 상당한 전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입시 때문에 소외돼 있는 예술교육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짧은 시간 내에 문화적 토양을 개선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문화 소비가 일부 고소득층의 전유물이 될 수도 있다.
미술품 양도세가 시행되면 미술계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때 반짝했으나 경기 침체에 따라 크게 가라앉은 미술품 구매 심리는 더 위축되고 작가들의 형편은 나빠질 것이다. 고가 미술품은 소재 파악이 어렵기 때문에 음성 거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문화예술의 특성상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세계 각국은 문화 분야를 ‘창조 산업’으로 치켜세우고 있다. 기존 산업과는 개념과 차원이 전혀 다른 중요한 분야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문화 수준에서 큰 격차가 있고 아직 쫓아가기에도 벅찬 상황이다. 이 시점에 어떤 일이 먼저인지 정부는 큰 흐름을 읽어야 한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