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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투데이]대유행 ‘족집게 투자’의 위험한 유혹

입력 | 2010-10-27 03:00:00


한국은 시험 공화국이다. 수많은 ‘개용남(개천에서 용 된 남자)’은 각종 어려운 시험의 합격으로부터 출발한다. 단 한 번의 시험이 일생을 좌우한다는 것에 대한 반감도 있지만 그나마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공정한 신분 상승 시스템이라는 점에 다수가 공감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이 시험과 관련해 온갖 서비스가 발달해있다. 세상에 고시촌이라는 이름의 집단 촌락이 형성된 곳은 한국이 유일할 것이다. 각종 학원과 수험 서적이 넘쳐난다.

또 수많은 사람들이 시험과 관련해 먹고살며 한 산업을 형성할 정도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인들의 심리에는 ‘족집게’에 대한 신화가 자리 잡고 있다. ‘수능 특선 1000문제’라든지 ‘서울대 가기 100일 작전’ 등 압축적인 요령이 분명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사실 잘 정리된 문제집이나 참고서는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작년 이후 투자 시장에서도 이 족집게 투자가 열풍을 일으켰다. 이름 하여 ‘랩(Wrap)’ 투자다. ‘wrap’은 ‘둘러싸다’는 의미의 영어 단어이다. 한 계좌로 여러 개 상품을 골고루 갖추어 안전하게 분산 투자할 수 있게끔 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요즘은 이게 서너 개 종목에 집중 투자해 단기 고수익을 노리는 투자 방법으로 변신했다. 여기에는 초기의 성공이 불을 댕겼다. 기존 자산운용사의 펀드 규모가 커지면서 ‘비만증’으로 운용이 부진해 고객의 실망감이 컸던 것도 랩으로의 이동을 도왔다.

투자의 최고 고수는 절대 분산 투자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한다. 몇 개 종목에 집중한다. 워런 버핏이 대표선수다. 지금은 워낙 덩치가 커져 50개 이상 회사에 분산 투자하고 있지만 그의 투자 방법은 재벌 총수가 사업을 결정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우리가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못 된다. 아무튼 랩의 성공으로 최근 증시에는 압축 투자(족집게 투자)가 대유행이다. 기존의 다양한 종목에 분산 투자해서는 벤치마크를 따라다니는 답답한 실정이니 10개 미만이나 많아야 20개 미만의 종목으로 승부를 결정하자는 얘기다. 이는 전적으로 종목을 고르는 펀드매니저의 신통력을 보고 맡기는 것인데 경우에 따라 상당한 효험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날이면 날마다 대박 나는 종목을 고를 수 있는 귀신은 없다는 것. 또 규모가 커지면 종목 수가 적은 것이 오히려 큰 리스크다.

돈이 많은 투자자가 일부 자금을 ‘고위험 고수익’ 원칙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랩으로 운용한다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또 사모펀드를 이용해 같은 방식으로 투자를 해도 좋은 효과를 노릴 수 있다. 그러나 정확한 메커니즘을 모르고 단순히 고수익 상품으로 인식하는 것은 후유증이 만만찮다. 투자 방식은 자유다. 다만 내용은 알아야 한다.

이상진 신영자산운용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