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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칼럼/안현진]회당 17억원에 팔린 드라마 ‘모던 패밀리’

입력 | 2010-10-24 17:15:00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배웠던 사회과목 교과서에는 가족의 유형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전통가족, 확대가족, 그리고 핵가족. 주관식 시험 문제로 혹시 나올까 달달 외웠는데, 아직도 기억에 콕 박혀있다. 기억을 되돌아보건대 그 당시의 나는, 그 세 가지 이외의 유형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미약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라면서 만나게 되는 친구들과 사람들을 보면 그 세 가지 유형에 포함되지 않는 형태의 가족에서 낳고 자란 사람이 더 많았다.

그 당시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가능성은 1개 세대, 즉 독신인 1인이 가족을 꾸릴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내가 꾸린 가정의 형태가 딱 그렇다. 살 비비고 머리 맞댈 가족 구성원이 나 말고는 없는 상황. 강산이 두 번은 바뀔 만큼의 시간이 지났으니 초등학교 교과서야 여러 번 바뀌었겠지만, 이런 생각 끝에 문득 궁금해진다. 요즘 교과서는 가족의 유형을 어떻게 분류하는지 말이다.


▶모큐멘터리 스타일의 가족 코미디

가족 유형을 구실로 삼아서 소개하려는 미국드라마는 최근 가을 시즌 개편과 함께 시즌2를 시작한 ABC의 시츄에이션 코미디 '모던 패밀리'(Modern Family)다. '모던 패밀리'의 가장 큰 특징은 '모큐멘터리'(Mockumentary, Mock-documentary라고도 쓰이며, 다큐멘터리 형식을 띤 드라마) 형식을 사용한 것인데, 사건이 벌어지면 해당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이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사건에 대한 입장을 해명하거나 진심(처럼 보이는 진술)을 털어놓는 식이다. 예를 들면, A가 B에게 발뺌하는 장면 뒤 인터뷰 장면이 나오면 A가 카메라를 향해 내막을 털어놓는 식이다. '오피스' '파크 앤드 리크리에이션' 등의 코미디 TV시리즈에서 이미 여러 차례 시연된 바 있는 스타일이지만, 한국의 TV드라마에서 사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현대의 가족'이라고 번역이 될 타이틀에 충실하게 '모던 패밀리'는 세 가족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하지만 '모던 패밀리'의 세 가족은 내가 초등학교 때 배우지 못했던 유형의 가족들이다. 제일 먼저 소개되는 가족은 부동산 중개업자 필(타이 버렐)과 전업주부 클레어(줄리 보웬) 부부와 그들의 세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이다. 결혼 16년차인 그들은 슬하에 큰 딸 헤일리, 둘째딸 알렉스, 막내 아들 루크를 두었다.

캘리포니아 교외에 둥지를 튼 이들 부부는 그러나 오늘날 부모 노릇에 제기되는 많은 잘못된 예를 몸소 실천하며 보여준다. 필은 '세상에서 가장 쿨~한 아빠'가 되고 싶은 욕심에 10대 용어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연습을 하고, 아빠가 무른 탓에 자기만 못된 엄마가 된다고 생각하는 클레어 역시 따끔하게 꾸짖기보다는 반복적인 잔소리로 반항심만 키운다. 자포자기도 빠른 편이라, 이제 16살이 된 큰 딸 헤일리가 엄마 말을 무시하고 남자친구랑 놀러 갈 생각에 골똘하면 결국 카메라에 대고 이렇게 고백한다. "헤일리가 플로리다 해변에서 반 나체로 잠에서 깨지만 않아도 저는 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해요."

두번째 가족은 게이 커플인 밋첼(제시 타일러 퍼거슨)과 캐머론(에릭 스톤스트리트)으로 둘은 막 베트남에서 릴리라는 여자아기를 입양했다.

마지막은 황혼 이혼 뒤 딸 뻘인 콜롬비아 출신의 트로피와이프 글로리아(소피아 베르가라)와 재혼한 제이(에드 오닐)다. 글로리아는 전남편과 사이에서 낳은 아들 매니를 제이와 재혼하면서 데리고 왔다.

▶현대의 가족 유형을 꿰뚫는 반전으로 인기몰이

'모던 패밀리' 첫 회는 이 세 가족의 일상을 보여준다. 아이들 돌보기에 정신이 없는 필-클레어 부부, 입양한 아기 덕분에 생기가 도는 카메론-밋첼 커플, 그리고 고집스러운 남편 제이와 나이에 비해 조숙한 아들 매니 사이에서 현명하게 처신하는 글로리아의 모습이 그렇다. 각각의 일상은 사건과 인터뷰 장면을 병치시켜서 이 심성이 착한 코미디에 현실적인 톤을 칠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특히 이 가족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시대성을 반영하고 있기에 그 속에서 보여지는 코미디가 단순히 웃음을 주는 수준을 넘어서 더욱 진실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파일럿의 마지막에는 예상치 못한 반전이 기다린다. 제이의 집 현관문이 열리고 밋첼과 카메론이 릴리를 안고 들어온다. "아버지 우리 왔어요." 뒤이어 필과 클레어 가족이 들어온다. 아이들도 뛰어 들어온다. "할아버지 우리 왔어요."

'모던 패밀리'는 이 예상치 못한 혹은 예상했을 수도 있는, 제이가 클레어와 밋첼의 아버지라는 반전으로 2009년 9월 첫 방영 당시 1261만명의 시청자를 TV앞으로 끌어들이며 같은 시간대 그리고 같은 시기 방영을 시작한 TV시리즈 및 코미디 프로그램 중에서도 압도적인 호평을 받았고, 방영 2주 만에 첫 시즌 전체 방영이 결정됐고, 2010년 1월 시즌2 방영이 결정되면서 ABC의 간판급 코미디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모던 패밀리'의 2013년 네트워크 방송권이 FOX 채널에 판매됐는데 알려진 바에 따르면 회당 150만 달러(약 17억원)에 가까운 금액을 지불했다고 하니, 미국 내에서 '모던 패밀리'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프라임타임 에미시상식에서 '올해의 가장 뛰어난 코미디상'을 수상했고, 캐머론 역의 에릭 스톤스트리트와 클레어 역의 줄리 보웬이 나란히 코미디 부문 최우수 연기자상을 각각 수상했으니 대중과 평론계의 인정을 고루 받은 셈이다. 에드워드 노튼, 엘리자베스 뱅크스, 채즈 팔민테리, 미니 드라이버 등의 배우는 물론 스포츠스타 코비 브라이언트까지도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충실한 애프터서비스, 시청자의 의견도 반영합니다~

너무 인기가 많다보니 시청자가 에피소드의 내용에 개입한 사건도 있다. 시즌1 중반 정도에 게이 커플인 밋첼과 카메론의 육체적 접촉이 너무 적다는 비판이 거세게 제기됐는데 이 의견은 평론 수준을 넘어서서 '밋첼과 카메론 사이에 육체적 애정표현을 허하라(?)'라는 페이스북 캠페인으로까지 이어졌다. 결국 '모던 패밀리'의 제작팀은 다음 에피소드에서 밋첼이 사람 많은 곳에서 애정표현을 하기를 꺼리는 이유에 대해서 다루겠다고 공식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The Kisses'라는 소제목으로 만들어진 해당 에피소드는 카메론이 밋첼의 그러한 성향에 대해서 불평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제이가 밋첼에게 애정표현을 아꼈기 때문에 지금의 밋첼로 자랐다는 (글로리아의) 추측으로 이어졌다. 결국 글로리아는 제이에게 "밋첼에게 뽀뽀해줘요!"라는 명령에 가까운 부탁을 하고, 어색한 부자(父子)가 엉거주춤 끌어안는 마음 따뜻해지는 장면이 연출된다. 그리고 그날 밤 제이는 한발 더 나아가 매니가 잠든 방으로 찾아가 아들의 볼에 입을 맞춘다.

'모던 패밀리'의 에피소드는 종종 이런 형식으로 구성된다. 한 가족에서 시작된 작은 일화가 세 가족을 아우르는 사건으로 확대되고, 그 사건을 들여다보면 결국 '가족'이라는 끈끈한 정을 발견하는 것이다. '타임'은 '모던 패밀리'를 두고 이렇게 촌평했다. "'모던 패밀리'의 힘은 반전에 있지 않다.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은 가족의 결속, 그 자체에 있다."

▶피로 맺어진 관계만 가족입니까

좀 다른 이야기인데, '모던 패밀리'를 소개하다 보니 김태용 감독이 연출한 한국영화 '가족의 탄생'이 떠올랐다. 사회생활 시작한 첫 해의 추운 겨울밤이었다. 대학 시절 유사가족이나 마찬가지로 가까이 지냈던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서 어딘가를 다녀오다가 종로의 허름한 예술영화전용극장에 들어가 영화를 봤다. 우연이겠지만 이 영화 역시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세 가족이 연결된 지점을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피보다 더 진한 정으로 맺어진 사람들의 이야기. 극장 문을 나서는데 친구들의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답답하면서도 가슴이 따뜻해서 뭐라고 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아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다가 집에 돌아온 기억이 아득하다. 그때 말없이 그러나 다 같이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곁에서 나를 아껴주는, 내가 아껴주고 싶은 사람들도 내 가족이라고.

안현진 잡식성 미드 마니아 joey04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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