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르발 남작의 성/최제훈 지음/304쪽·1만1000원/문학과지성사
“형식 자체가 내용이 되는 소설을 써보고 싶었다”는 소설가 최제훈 씨. 그가 기존 서사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틈새가 벌어지고 충돌이 일어난다. 거기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홍진환 기자 ean@donga.com
이 단편집의 표제작은 마치 타임머신에 탑승해 ‘퀴르발 남작의 성’이라는 코스의 버튼을 누른 것 같다. 시점상 코스의 처음은 (작가는 소설의 마지막에 이를 배치했지만) 르블랑 부부가 딸을 퀴르발 남작의 성에 하녀로 보내기 전 남작이 애들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을 떠올리며 불안해하는 장면이다. 이 소문은 200년 뒤 프랑스에서 할머니가 손자들에게 들려주는 해피엔드 동화로 바뀐다. 아이를 잡아먹는 괴물 남작이 영리한 소년의 꾀에 넘어가 죽어버린다는 줄거리다. 그 손자 중 하나가 35년 뒤 할머니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서 자매간의 미묘한 질투를 덧입힌다. 19년 뒤 소설이 스크린에 옮겨질 때는 관객을 바짝 졸아들게 하는 호러 영화로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1993년 서울의 대학 강의에 이르면 영화의 여주인공은 ‘관습화된 호러 영화 속 여성상을 탈피한 적극적인 내러티브의 주체’로 해석되고, 2004년 일본 감독은 영화의 해피엔드를 ‘욕망에 매몰되기보다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이를 극복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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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이어붙이기’의 형식은 필연적으로 어긋남과 그로 인한 틈, 마찰을 빚는다. 작가의 주제의식이 발현되는 것은 이 부분이다. 그는 ‘퀴르발 남작의 성’에서 서사의 오독을, ‘괴물을 위한 변명’에서는 인간 내면의 괴물을 붙잡아낸다. 경쾌한 재구성 뒤의 뒤통수치는 이 반전, 이 작가의 첫 소설집이 주는 서늘한 충격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