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국내 대학의 세계 랭킹은 여전히 빈약하기만 하다. 100위 내에는 겨우 KAIST(79위)가 하나 더 들어 있을 뿐이고 200위까지 찾아봐도 서울대(109위)와 연세대(190위)뿐이다. 국내총생산(GDP)과 교역규모가 세계 10위에 육박하고 자동차와 철강은 5위, 반도체와 인터넷은 세계 최강이라는데 대학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하기만 하다. 주요 20개국(G20) 의장국의 체면에도 전혀 걸맞지 않은 수준 아니겠는가.
국민의 교육 열풍까지 감안하면 마음이 더욱 참담해진다. 세계 수준이 그렇게 낮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온 국민이 얼마나 많은 사교육비를 지출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가. 국내 대학의 수준이 그런 정도라면 이 땅을 떠나는 기러기 가정에 동정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해외 명문에 필적하는 국내 대학을 10개만 육성한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상위 10%에 드는 수험생까지도 세계 수준의 국내 명문에 진학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 그렇게 되면 수십 년 묵은 입시 고질병도 대부분 사라진다. 어디 그뿐인가. 한국인의 자긍심은 또한 얼마나 드높아지겠는가.
교육열풍 감안하면 아직은 참담
실제로 세계 일류대학은 대부분 상위 10%의 학생을 유치한다. 세계 30위 수준의 싱가포르국립대도 평균 15% 이내의 입학생을 받는다. 이렇게 보면 우리 입시 문제의 핵심은 대학은 많아도 정작 가고 싶은 대학이 너무나 적기 때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세계 100대 명문에 맞먹는 국내 대학을 10개만 육성한다면 국가의 백년대계가 명확해진다.
국내 대학의 명문화는 우리 경제의 선진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도 절실히 필요한 현안이다. 일부 제조업의 경쟁력만으로 어떻게 3만∼4만 달러의 국민소득을 달성할 수 있겠는가. 지식기반 사회의 국가 경쟁력은 고급 인력에서 비롯된다.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되는 사회에서는 소수의 전문인력이 일당백(一當百)으로 다수의 국민을 책임져야 한다.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도 모두 전문인력에게 좌우될 수밖에 없다. 물론 대학의 명문화는 그 자체로도 국민 경제에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많은 나라가 선진화 정책의 하나로 자국 대학의 명문화를 추진한다.
더 멀리 갈 것도 없이 포스텍이 바로 이 명제를 그대로 입증한다. 창립 이후 24년 동안 포스코의 재정 지원을 바탕으로 현재는 등록금의 12배를 학생 1인당 교육비로 지출한다고 한다. 대기업이 경상비의 40%를 안정적으로 지원한 결과다. 풍부한 재원과 강력한 리더십으로 지방대의 벽을 넘어 우수학생과 핵심인력을 유치하며 세계 명문으로 도약한 셈이다.
물론 기업보다는 국가가 지원하는 경우가 더 많다. 중국은 거점 대학의 명문화를 위해 1998년부터 GDP의 1%를 쏟아 붓고 있다. 그 결과 짧은 기간에 6개 대학을 200위권에 올려놓았다. 싱가포르 역시 5년 단위로 예산을 일괄 지원하며 대학의 경쟁력과 글로벌화를 뒷받침한다.
재원-자율성 제고 정부가 나서야
우리 정부는 어떠한가? 중국처럼 GDP의 1%라면 한 해 10조 원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 물론 일과성 연구비나 특정한 프로젝트 지원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관성 있는 명문화 정책이나 자율성 제고는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이런 여건에서 등록금 상한제나 획일적인 규제에 얽매인 국내 대학이 어떻게 자생적으로 세계 명문으로 도약할 수 있겠는가.
정갑영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