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명분당당’ … 현대車그룹 ‘암중모색’
현대건설 채권단이 24일 회사 매각 공고를 내기로 함에 따라 현대건설 인수를 둘러싼 현대가(家)의 미묘한 기류가 한층 가열되고 있다. 현대건설을 보유했던 현대그룹은 ‘기득권’을 주장하고 있는 데 반해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은 사실상 현대가의 ‘적통’임을 내세우며 신경전을 벌여왔다.
현대그룹은 매각 공고일이 다가오면서 지금까지보다 더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미 여러 차례 공식적으로 인수 의사를 밝혔으며, 현대차그룹의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대그룹은 무엇보다 명분을 내세운다. 특히 2000년 현대건설 유동성 위기 당시 고 정몽헌 회장이 4400억 원에 이르는 사재를 쏟아 부으며 경영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던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 2006년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졸업 이후 4년 동안 현정은 회장과 임원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현대건설 인수 의지를 밝혀 왔다는 점도 적극 알리고 있다.
광고 로드중
현대그룹이 공개적이고 적극적으로 현대건설 인수를 추진하는 것과 달리 현대차그룹은 ‘암중모색(暗中摸索)’으로 일관하고 있다. 현대건설 인수가격은 현재 3조∼4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대차그룹은 약 5조 원의 현금과 10조 원에 이르는 현금성 자산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현대그룹은 약 1조 원의 현금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그룹이 월등한 자금 동원 능력에도 불구하고 현대그룹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동안 정몽구 회장이 현대건설에 대한 관심을 외부로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대건설에 관심이 있었다면 엠코(현대·기아차그룹의 건설회사)를 설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수차례 밝히기도 했다. 또 ‘잘사는 아주버니(정 회장)가 형편이 어려운 제수(현정은 회장)의 밥상마저 빼앗으려 한다’는 여론도 현대차그룹이 넘어야 할 숙제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