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 외길 여원구 동방연서회장
여원구 동방연서회장이 1일 서울 종로구 동방연서회 서실에서 붓을 들어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고 쓰고 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평생을 서예에 몸담아 온 구당 여원구 동방연서회장(78)은 틈날 때마다 붓을 들어 한지에 불교 경전인 ‘법화경’을 옮긴다. 여든이 가까운 나이지만 7만여 자에 이르는 글자를 쓰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여 회장을 만났다.
“동네에서 유명한 개구쟁이였는데, 붓만 잡으면 차분해졌어요.” 여 회장은 처음 서예를 접할 때를 회상했다. 앞집 살구나무에 올라가 살구를 따 먹고, 막대기로 소를 찔러 괴롭히던 그를 아버지가 불러 앉혀 천자문을 한 글자씩 가르친 게 서예의 시작이었다. 고향인 경기 양평을 떠나 1960년대 서울로 올라온 뒤 1970년대부터 서예가 여초 김응현 선생(1927∼2007)을 사사했다. 초등학교 교사, 대학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붓을 놓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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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정규 과목에서 빠진 것이 가장 아쉽다는 그는 “지식을 전달해주는 것 외에 인성을 완성시키는 것도 교육인데 학교가 그 역할을 다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고등교육을 받고 사회에 나온 다음에는 이해심과 인내심이 필요한데 서예를 배우면 정서 순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중일 한자문화권에 속한 나라 중 유독 한국만 한자에 소홀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강, 김, 여…. 성에도 한자를 사용할 정도로 한자는 우리 생활과 밀접한데 한자 교육과 서예를 등한시하면 언어에 담긴 뜻을 음미하기 어려울뿐더러 옛 선인들의 글을 읽을 수 없어 역사를 이해하기 힘들게 됩니다.”
인터뷰 말미, 여 회장이 붓을 들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던 그가 곧 먹을 듬뿍 묻혀 글을 썼다. ‘溫故知新(온고지신·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배운다는 말)’.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고사성어를 고른 그는 “물질만 중시되고 정신적 가치가 결여된 이 시대, 서예의 정신적 가치와 한자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