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이유가 공정한 사회라는 개념에 대한 당초 청와대의 인식 때문이라고 본다. 공정한 사회가 새 국정 기조로 검토되기 시작한 것은 7월 16일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청와대에 들어온 직후부터라고 한다. 공정한 사회는 지향하는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사회적 약자가 대상이면 불이익을 주지 않고, 공평한 기회를 보장한다는 식의 시혜적 의미를 띤다. 반면 사회적 강자가 대상이면 반칙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억제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청와대는 이 가운데 전자를 택한 것이다.
광복절 경축사에 그 해답이 있다. 이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는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되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사회”라고 정의했다. 또 “공정한 사회에서는 패자에게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고, 넘어진 사람은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일어선 사람은 다시 올라설 수 있다”라고 부연 설명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담겨 있다. 실제로 공정한 사회는 현재 이명박 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친서민 중도실용’에 그 맥이 닿아 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말한다. 친서민 중도실용이라는 몸통에 공정한 사회라고 하는 ‘가치의 옷’ ‘철학의 옷’을 입혔다고 보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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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초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설정했던 공정한 사회라는 개념이 인사청문회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적 강자를 대상으로 반칙과 특권을 배격하는 의미까지 함께 갖는 것으로 변했다. 청와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개념의 외연이 확장된 것이다. 국민에게 단시간에 새로운 국정 기조를 확실하게 각인한 것까지는 좋지만 그만큼 이명박 정부의 부담도 커지게 됐다. 공정한 사회가 이명박 정부에 자승자박(自繩自縛)이 될지, 정권 재창출과 국정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촉매제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