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교육기부운동 항공기공장서 첫발
20일 경남 사천시 사남면에 있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본사. T-50, KT-1 등 국내 기술로 개발된 항공기가 제작되는 현장이다. 과학교사 40명이 ‘KAI 에비에이션 캠프’에 참석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1박 2일로 진행된 이 캠프는 부품동, 민항기 조립동, 항공기동 등 생산 공장을 둘러보는 관찰학습으로 시작됐다. 3만 m²(약 9300평)가 넘는 대형 부품동에서 눈에 띈 것은 오목하고 볼록한 요철(凹凸) 형태를 띤 동체 외피들과 허니콤(육각형 벌집 모양)이라 불리는 속이 빈 구조의 부품들.
“알루미늄 판을 왜 올록볼록 파냈지요?” 요철 형태를 보고 여기저기서 질문이 나왔다.
이때 적용되는 과학 원리가 ‘산화와 환원’ 이론. 현장을 둘러보던 선생님들은 강의실로 자리를 옮겨 산화·환원 반응을 직접 실험해 봤다. 테이프를 붙인 알루미늄 판에서 깎아낼 부분만 테이프를 떼어 낸 뒤 푸른색 염화구리 수용액에 담가보는 실험이었다. 10여 분이 지나자 테이프를 떼어낸 부분의 알루미늄 판이 녹으면서 요철이 뚜렷해지고, 푸른색 수용액의 색은 옅어졌다.
“알루미늄은 전자를 잃어 부식되고 염화구리 수용액은 전자를 얻어 금속 구리가 되면서 색이 바뀌었는데, 이것이 바로 산화와 환원 원리”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고등학교 화학 교과서 ‘산화와 환원’ 단원 속 내용이 화학반응으로 부품의 무게를 줄이는 항공기 제작 현장에서 재연된 셈이다.
지난해부터 KAI는 사내 연구원 40여 명을 동원해 고등학교 물리, 지구과학, 화학, 수학 교과서 등을 분석한 뒤 항공기 제작에 적용되는 과학 원리 48개 항목을 체계화했다. 이 가운데 우선적으로 ‘베르누이의 원리’(항공기가 나는 원리) ‘산화와 환원’ ‘파스칼의 원리’(비행기 조종 원리) ‘전자기 유도’(비행기 결함 검사 원리) 등 4가지 과학 원리를 현장에서 체험하고 실습하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기업 현장을 둘러보는 견학 이벤트는 많지만 기업 현장과 교과 과정을 연계해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은 KAI가 처음이다.
김홍경 KAI 사장은 “지인의 자녀가 본사 공장을 둘러본 뒤 수학과 과학에 부쩍 흥미를 느끼는 것을 보고 기업 현장의 학습 효과를 절감했다”며 “특히 우리 사회에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각한데 이런 현장 교육을 통해 항공산업의 우수 인재를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와 관련해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달 초 한국과학창의재단과 협약을 체결하고 기업들의 교육기부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SK텔레콤과 현대제철, 종근당 등 10여 개 기업이 참여 의사를 나타냈기만 당초 예상보다 기업들의 참여가 저조해 발대식이 10월 이후로 연기됐다. 상의 관계자는 “돈으로 쉽게 기부하는 것보다 기업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사천=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20일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본사에서 열린 ‘에비에이션 캠프’에 참석한 과학교사들이 KAI가 개발한 주력 전투기 T-50을 직접 타보고 작동 원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천=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