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중 어느 하나도 극복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민생은 만성질환이고 대남관계는 핵 문제가 걸려 있고 김정일의 지병으로 체제세습을 미룰 수 없는 처지다. 어느 것 하나 스스로 해결할 수 없고 포기할 수 없는 난제다. 북한이 선택한 핵 카드는 트로이의 멸망을 가져왔던 파리스의 사과처럼 오히려 체제를 붕괴시키는 촉매제로 변질되고 있다. 특히 많은 경제위기가 정권교체기에 발발했던 역사적 사례를 감안한다면 북한 상황이 결코 심상치 않아 보인다. 미국의 대공황과 최근의 금융위기도, 한국의 외환위기도 모두 정권이 바뀔 때 터지지 않았는가.
북한의 위기에 대비하여 우리는 과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대통령은 통일비용의 재원으로 통일세 논의를 제안하였다. 이념의 환상에 갇혀 있던 통일문제를 구체적으로 부담해야 할 세금으로 논의해 보자는 말이다. 물론 어느 누구도 아무런 대가없이 통일이 달성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특히 남북한의 소득격차가 무려 18배에 이르니 막대한 통일비용이 소요되리라는 점은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는 일 아닌가.
과연 그 비용은 얼마나 소요되고 누구에게 많은 부담을 지게 해야 하는가. 통일비용은 적게는 3000억 달러에서부터 많게는 수조 달러에 이르기까지 발표 수치만 놓고 보면 연구기관마다 천차만별이다. 추정치가 난무하여 혼란스럽기도 하다. 통일비용은 어떤 목적으로, 언제, 어떻게 집행하느냐에 따라 추정치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우선 소득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통일비용을 계산해 보자. 북한의 낮은 소득을 어떻게 끌어올릴 수 있을까. 몇 년 안에 남한과 동일한 수준으로 만들려면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다. 남한의 절반 수준만 유지한다면 비용도 절반밖에 들지 않을 것이다. 소요기간에 따라 10∼30년으로 분할할 수도 있고 복지혜택으로 직접 나눠줄 수도 있으며 공장을 세워 우회적으로 소득을 창출할 수도 있다. 통일과정의 시나리오에 따라 수없이 많은 추계치가 등장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통일비용의 규모는 통일과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먼저 이루어져야만 근사치를 정할 수 있는 셈이다.
통일비용을 정확히 추정한다 해도 비용부담은 또 다른 문제다. 통일은 원하지만 비용부담은 싫다는 국민이 많기 때문이다. 자신이 부담할 용의가 있는 수준을 물으면 대체로 매우 낮은 수치로 응답한다. 일부에서는 막대한 통일비용을 부담하면서 굳이 통일을 해야 하느냐는 궁극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독일의 통일 이후 많은 조사에서 통일에 대한 국민의 염원이 크게 저하된 이유도 모두 비용분담의 문제 아니겠는가.
따라서 통일비용의 추정도, 재원의 조달도 모두 통일과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종속변수의 성격을 갖는다. 다시 말하면 통일세 논의는 어떤 통일방안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가에 대한 사전적인 공론화 없이는 한 발짝도 더 나갈 수 없는 과제다.
시나리오별 부담증가 감안해야
과연 어떤 과정이 우리에게 가장 바람직할까. 통일비용을 줄이기 위해 다시 화해와 협력을 통해 점진적인 통일을 추진해야 하는가. 그러나 지금 남북관계는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너고 있다. 극적인 계기가 없는 한 과거로 회귀하기 어렵고 군사적 긴장 속에 북한의 위기만 더 증폭되고 있다. 그렇다면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고 일전불사의 각오로 적극적인 통일을 추진해야 하는가.
통일세 논의에 앞서 정부와 국책 연구기관이 앞장서서 통일논쟁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 북한 정보를 폭넓게 공개하고 다양한 정책 시나리오에 대한 의견 수렴을 시도하여야 한다. 그래야 통일정책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고 통일과정의 혼란을 극복할 수 있으며, 필요한 재원도 충분히 조달할 수 있다.
정갑영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