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이 흐른 2010년 8·8개각은 지금 한나라당 정권의 주류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확인시켜 주었다. ‘정권 2인자’로 불리며 재·보궐선거에서 부활한 이재오 의원은 특임장관에 내정돼 정권 재창출의 핵심 역할을 할 것임을 예고했다.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가 48세에 국무총리로 지명된 것은 여권 차기 경쟁구도를 흔들 조짐이다. 친이(친이명박)계는 주요 장관직에도 전면 포진했다.
8·8개각이 정권 주류 측의 ‘박근혜 포위’ 또는 ‘박근혜 포기’를 확실하게 가시화했다는 풀이도 여권 일각에서 나온다. 박 전 대표가 대운하 건설 반대에 이어 6월 29일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국회 본회의 표결 때 직접 반대토론에 뛰어든 것을 놓고 정권 핵심부에선 일종의 선전포고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 무렵 친박(친박근혜)계 일각에서 균열이 생겼다. 친박계 좌장 격이던 김무성 원내대표가 박 전 대표와 사실상 결별했다. 한때 박 전 대표와 남다른 신뢰관계였던 진영 의원도 친박계에서 이탈했다. 박 전 대표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20% 중반대까지 떨어졌다. 박 전 대표는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여름은 유난히 무덥고 열대야가 계속돼 참으로 힘든 것 같다”고 토로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민자당에서 소수 비주류였음에도 정권을 장악해 나갔다. 박 전 대표가 그 YS 모델을 추구할 수도 있다. 3당 합당 직후 YS 직계인 민주계는 당내 세력의 30% 정도에 불과했지만, 다수파인 민정계에게 “죽을래? 살래?” 윽박지르다시피 하며 빠른 속도로 세를 확대했다. 문제는 박 전 대표가 YS의 ‘군사독재 청산’ 같은 시대적 명분을 쥘 수 있느냐다. YS는 민주화를 위한 자기희생이라는 정치적 재산을 스스로 일군 정치인이었다. 박 전 대표에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아버지의 유산’을 뛰어넘어 ‘국가와 국민을 위한 희생’을 입증해 보여야 할 숙제가 남아 있다.
이제 박 전 대표는 시험대에 섰다. 2012년 대회전(大會戰)에서 비주류의 처지를 주류로 역전시키기 위해서는 압도적 1위라는 지금까지의 상대평가에 자신을 계속 가두어두고 있을 수 없다. 2002년 민주당 경선에서 대세론에 안주하다가 한순간에 무너진 이인제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도 그렇다.
친이 쪽도 리스크는 있다. 박 전 대표 끌어안기에 실패함으로써 여권 분열과 대선 패배의 길을 갈 수도 있다. 2012년을 향한 여권의 예선전이 점점 볼만해지고 있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