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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본 이 책]자본주의 관둘 수도…양극화 방치할 수도…기부에서 길을 보다

입력 | 2010-07-10 03:00:00


◇박애자본주의/매튜 비숍, 마이클 그린 지음·안진환 옮김/504쪽·1만8000원/사월의책

2006년 6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왼쪽)은 자기 재산의 85%에 해당하는 374억 달러의 대부분을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운영하는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했다.저자는 이 같은 기부가 단순히 자선이 아니라 그 자체로 대안산업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30년 대공황이 절정에 이르던 순간 경제학자 케인스는 ‘내 후세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에세이를 통해 “여러분이 지금 파국을 우려하면서 공포에 질려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 경제는 이번 세기 안에 4∼8배 성장할 것이며, 앞으로도 번영은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여러분에게 축복인지는 모르겠다”는 말을 남긴다.

지금 시점에서 케인스의 에세이를 다시 읽어보면 한 인간의 통찰력이 이 정도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울 정도다. 실제 미국 경제는 이후 6배 성장을 이룩했지만 대다수의 미국인은 당시보다 행복하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기회 측면에서 최근 10년간의 미국을 들여다보면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2000년 초 미국의 총고용자 수와 2010년 초 미국의 총고용자 수를 비교할 때 총고용은 오히려 줄어들었고, 물가 상승을 감안한 가처분 소득 역시 정체상태다. 하지만 같은 기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약 19% 성장했다. 즉 미국 경제의 총량은 거의 20%가 늘어났지만, 인구 증가를 감안할 때 대다수 미국인의 삶은 나빠진 것이다.

이유는 신자유주의 확산 때문이다. 기업이 글로벌화하면서 기업은 더 많은 이익을 내는 것이 지상 목표가 되었고, 기업이 더 많은 수익을 위해 노동비용을 줄이거나 생산시설을 이전하고, 그나마 영업이익률이 낮은 제조업에 대한 투자보다 금융서비스업 등에 투자를 강화함으로써 극단적 양극화가 발생한 데 있다.

하지만 이런 구조는 자기파괴적이다. 근로자들의 임금이 늘어나고, 고용의 기회가 충분할 경우 근로자는 곧 건강한 소비자가 되고, 그것이 곧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다. 하지만 이런 양극화의 구조가 고착화하면 기업의 생산품을 소비하는 최종소비자의 구매력이 떨어지고, 그것은 곧 산업과 기업의 몰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금 자본주의, 혹은 미국식 시장경제의 핵심 문제점이다. 하지만 이런 구조를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1800년 산업혁명을 이끌고, 최저 생존선을 밑돌던 인류의 생산성을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끌어 올린 원동력이 바로 자본주의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윤추구의 동기에 의해 움직이고 이러한 동기가 혁신과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자본주의가 가진 탐욕성을 부정하자면 발전이 정체되거나 후퇴할 것이고, 반대로 자본주의의 기여를 인정하고 자본주의의 독주를 허용하자면 스스로 자기기반을 붕괴시키고 종국에는 파멸에 이를 것이라는 두려움이 양날의 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대안은 없는 것일까, 혹은 자본주의체제의 장점을 그대로 두면서 자기파괴적인 모순을 극복할 길은 없을까 하는 고민이 대두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실제 이에 대한 대안 모색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고민의 산물이 바로 이 책이 소개하는 ‘박애자본주의(Philanthrocapitalism)’다. ‘박애자본주의’라는 용어는 그동안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사람의 피가 흐르는 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변주되면서 조금씩 얼굴을 보여 왔지만 이 책을 통해서 박애자본주의라는 하나의 형식을 갖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를 비롯한 세기의 거부들이 벌이는 재산기부 운동과 앤젤리나 졸리 등 유명 인사들이 시도하는 명사 박애주의, 이베이 등 기업들이 벌이고 있는 사회적 기업가 정신 운동, 혹은 조지 소로스 등이 하고 있는 정치적 박애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의 대안 모색을 다룬다.

특히 이 책은 우리가 막연하게 말로만 듣던 기부라는 행위의 효율성에 대해서도 깊숙이 다루고 있다. 우선 축적한 자산을 막연하게 누군가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자선’ 개념의 기부에서 벗어났다. 그런 뒤 전략적이고 효율적인 기부를 통해 사회의 질서를 바꾸려고 시도하거나, 기부금의 집행에 효율성을 제고함으로써 그 자체가 하나의 대안산업 내지는 비즈니스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는 발상의 전환지점까지 간파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이 책은 앞으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혹은 현실가능성이 가장 높은 수단으로서의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건강한 논의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 유일 대안이 아닌, 현실적으로 타협적 대안일 수 있다는 비판적 책 읽기가 필요하다는 점은 기억해야 한다.

박경철 경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