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애자본주의/매튜 비숍, 마이클 그린 지음·안진환 옮김/504쪽·1만8000원/사월의책
2006년 6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왼쪽)은 자기 재산의 85%에 해당하는 374억 달러의 대부분을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운영하는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했다.저자는 이 같은 기부가 단순히 자선이 아니라 그 자체로 대안산업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지금 시점에서 케인스의 에세이를 다시 읽어보면 한 인간의 통찰력이 이 정도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울 정도다. 실제 미국 경제는 이후 6배 성장을 이룩했지만 대다수의 미국인은 당시보다 행복하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구조는 자기파괴적이다. 근로자들의 임금이 늘어나고, 고용의 기회가 충분할 경우 근로자는 곧 건강한 소비자가 되고, 그것이 곧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다. 하지만 이런 양극화의 구조가 고착화하면 기업의 생산품을 소비하는 최종소비자의 구매력이 떨어지고, 그것은 곧 산업과 기업의 몰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금 자본주의, 혹은 미국식 시장경제의 핵심 문제점이다. 하지만 이런 구조를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1800년 산업혁명을 이끌고, 최저 생존선을 밑돌던 인류의 생산성을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끌어 올린 원동력이 바로 자본주의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윤추구의 동기에 의해 움직이고 이러한 동기가 혁신과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자본주의가 가진 탐욕성을 부정하자면 발전이 정체되거나 후퇴할 것이고, 반대로 자본주의의 기여를 인정하고 자본주의의 독주를 허용하자면 스스로 자기기반을 붕괴시키고 종국에는 파멸에 이를 것이라는 두려움이 양날의 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대안은 없는 것일까, 혹은 자본주의체제의 장점을 그대로 두면서 자기파괴적인 모순을 극복할 길은 없을까 하는 고민이 대두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실제 이에 대한 대안 모색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고민의 산물이 바로 이 책이 소개하는 ‘박애자본주의(Philanthrocapitalism)’다. ‘박애자본주의’라는 용어는 그동안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사람의 피가 흐르는 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변주되면서 조금씩 얼굴을 보여 왔지만 이 책을 통해서 박애자본주의라는 하나의 형식을 갖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책은 우리가 막연하게 말로만 듣던 기부라는 행위의 효율성에 대해서도 깊숙이 다루고 있다. 우선 축적한 자산을 막연하게 누군가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자선’ 개념의 기부에서 벗어났다. 그런 뒤 전략적이고 효율적인 기부를 통해 사회의 질서를 바꾸려고 시도하거나, 기부금의 집행에 효율성을 제고함으로써 그 자체가 하나의 대안산업 내지는 비즈니스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는 발상의 전환지점까지 간파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박경철 경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