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여우와 고슴도치의 비유를 바탕으로 톨스토이의 예술가적, 인간적 고뇌를 추적해 간다. 그에게 톨스토이는 고슴도치가 되고자 했으나 될 수 없었던 여우였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여우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고슴도치는 하나의 큰 것을 알고 있다.”
문호 톨스토이에 관한 이 책은 엉뚱하게도 그리스 시인 아르킬로코스의 말로 시작된다. 저자는 이 말이 두 가지 인간의 유형을 뜻한다고 해석한다. 모든 것을 하나의 거대한 구조에 근거해 이해하는 이들은 고슴도치형, 서로 모순되기도 하는 다양한 목표를 추구하는 이들은 여우형이다. 고슴도치형에는 플라톤 헤겔 니체 도스토옙스키, 여우형에는 아리스토텔레스 에라스무스 괴테 푸시킨이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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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속에 나타난 톨스토이의 역사관에 저자는 주목한다. 1812년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원정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서 톨스토이는 전쟁의 참혹함을 삶에 대한 의지로 헤쳐 나가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세밀하게 포착해냈다.
그는 영웅 나폴레옹과 실제 역사를 살아가는 개인을 상징하는 농부 플라톤 카타라예프를 소설 속에서 대비시킨다. 등장인물이 겪은 사건이 소설 속의 ‘공식 발표’ 속에서 왜곡된 채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는 설정도 자주 등장한다. 이는 기존 역사가들의 역사 서술을 전복하려는 톨스토이의 의도를 보여준다. 흔히 역사가들은 나폴레옹 같은 영웅이나 시대정신, 어떤 거대한 구조가 역사를 움직인다고 설명하지만 톨스토이의 관점에서 이는 실제로 역사를 살아가는 개인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거짓 역사다.
이 같은 전복을 가능케 하는 것은 톨스토이의 탁월한 재능이다. 저자는 “톨스토이는 특유의 속성, 즉 어떤 대상이 다른 모든 대상과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특정한 속성을 찾아내는 데 천재적 능력을 보였다”고 설명한다. 다채로운 삶의 본질을 포착하고 이를 묘사하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타고난 여우형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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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에필로그에서 등장인물들은 10여 년간의 풍파와 고뇌 끝에 일종의 평화를 얻는다. 마치 세상이 왜 그렇게 흘러가는지 이제 깨달았다는 듯한 평화다. 그러나 세상을 움직이는 근원이 무엇인지 톨스토이는 끝까지 답하지 못한다. 전체를 보는 것처럼 말할 뿐이었다. 고슴도치가 되고자 했지만 될 수 없었던 타고난 여우. 저자가 보는 톨스토이의 진짜 모습이다.
“그가 본 것은 하나의 일체가 아니었다. 끊임없이 세분화하는 미세한 것들, 무수한 개체로 나뉜 세계를 보았다. 떨쳐낼 수도 없고 변하지도 않는 재능, 곧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자신의 명철함에 톨스토이는 미치도록 분노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