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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60주년]바람찬 흥남부두 그 ‘굳센 금순이’들 모였다

입력 | 2010-06-23 03:00:00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12명 수소문해 초청잔치




1950년 12월 피란민으로 북적이는 함경도 흥남부두(위). 가요 ‘굳세어라 금순아’에 등장하는 금순이처럼 당시 흥남부두를 떠나 피란 온 금순이란 이름의 할머니들이 22일 서울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에 모였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목을 놓아 불러 보았다 찾아를 보았다/금순아 어데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였느냐/피눈물을 흘리면서 1·4 이후 나홀로 왔다.’

1950년 12월 27일 흥남부두의 철수 현장을 배경으로 피란민들의 애환을 노래한 ‘굳세어라 금순아’. 이 노래의 주인공처럼 북한에서 피란 온 주금순 한금순 송금순 김금순 유금순 최금순 씨 등 금순이 할머니 12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이 6·25전쟁 발발 60주년 특별전 ‘굳세어라 금순아!’의 하나로 금순이 할머니 초청 잔치를 22일 마련했다.

민속박물관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국군 유엔군과 함께 고향을 떠나야 했던 피란민 중 금순이라는 이름의 여성을 찾았다. 40여 명의 금순이 할머니가 문의를 해왔고 이날 행사엔 12명이 참석했다.

“그때 아버지가 두 달이면 집으로 돌아올 줄 알고 재산이랑 땅문서를 다 집 뒷마당에 묻고 함께 왔지.” 함경남도 흥남시에 살던 주금순 씨(69)는 열 살 때 흥남부두에서 LST 수송선을 타고 거제도에 왔다. 주 씨는 “이북 돈을 많이 들고 왔는데 쓸 수가 없어 다 태우고 그 뒤에 식량을 배급받으며 공장에 다녔다”고 전했다.

당시 열일곱 살이었던 한금순 씨(76)도 같은 배에 올랐다. “그때 몸이 너무 안 좋았는데, 제대로 눕지도 못하고 생쌀만 먹으면서 이틀을 배에서 버텼어.” 한 씨의 어머니는 전쟁 직전 인민군에 입대한 큰아들을 포기하고 한 씨와 세 남동생을 데리고 피란길에 올랐다. 그 후 한 씨는 포로로 잡혀온 큰오빠를 거제도에서 만났다. 큰오빠는 반공포로로 석방돼 국군에 입대했다.

배를 타고 내려와 거제도에 정착한 ‘금순이’들은 배급받은 주먹밥을 죽으로 끓여 먹거나 바닷가에서 게를 잡아 먹었다. 미군 옷을 빨거나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막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같은 이름을 가진 할머니들은 처음 만났지만 정겹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땐 집 앞을 지나가던 군인들도 ‘굳세어라 금순아!’라고 놀리기도 하고, 친구들도 ‘금순이 오빠 찾았니’라고 많이 놀렸지.” “금순이가 이렇게 많을 줄 몰랐어.”

‘굳세어라 금순아’전은 6·25 당시 생활상을 담은 유물을 선보이는 자리로 전시장 곳곳에서 금순이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 전시장 초입과 중간 부분 바닥의 표시 위에 관람객이 들어서면 스크린에 금순이가 등장해 당시 피란민들의 처참했던 생활상을 소개한다. 전시는 8월 23일까지 열린다. 02-3704-3152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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