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발발-9·28 서울 수복 1보 뉴스 전한 KBS 아나운서 출신 위진록 씨세월 지나며 모두 전쟁 잊어北도발 가능성 항상 경계해야
6·25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의 초청으로 방한한 위 씨가 22일 기자에게 들려준 전쟁 첫날의 서울 분위기는 사태의 심각성을 실감하지 못했던 당시 시민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위 씨는 일요일 오전 5시 10분쯤 당직 근무를 하다 군으로부터 ‘전쟁이 났다. 보도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위 씨의 상급자는 당시 육군 정훈감(대령)을 만나 “전쟁이 터졌다. 이미 (38선 아래쪽의) 개성이 함락된 것 같다”는 말을 직접 들은 뒤에야 방송을 결정했다.
이 보도를 마친 뒤 그가 한 일은 놀랍게도 축구경기 관전이었다. 위 씨는 “관중은 늘 그렇듯 ‘38선 지역에서 또 충돌이 일어났구먼’이라고 생각했다. 하긴 ‘전쟁이 터졌다’고 보도한 나도 축구장을 찾은 데다 친구들과 대포 한잔 할 생각을 했으니…”라고 말했다.
축구경기 도중 장내방송으로 ‘경기 중단’이 선언됐지만 시민들은 “재미있는데 왜 축구를 중단시키느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위 씨는 “당시 (상황을) 너무 몰랐고, 너무 안일했다”고 회고했다.
서울 점령 후 방송국 장악에 나선 북한군은 위 씨에게 ‘협력하겠다’는 취지의 전향서 작성을 강요했다. 위 씨는 방송국을 떠나 도피생활을 시작했다. 극작가 조남사, 연극배우 장민호 씨와 함께였고 경기도 어딘가로 영화배우 최무룡 씨를 만나러 가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러시아 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죽음의 집의 기록’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언젠가는 살아나갈 것이라는 한줄기 희망 때문에 도피생활의 절망을 견뎌냈다”고 말했다.
그는 9·28 서울 수복 이후 방송국으로 복귀했다. 서울 중구 정동에 있던 방송국이 폭격으로 완파돼 미군의 지원을 받아 마포구 당인동 부근의 한 송신탑 건물에 임시 방송국을 차렸다. 서울 수복을 알리는 뉴스도 여기에서 나갔다.
위 씨는 “전쟁은 잊혀져 간다. 젊은 세대만이 아니라 나도 잊어가고 있다. 그러나 후세에 전쟁의 의미를 남기는 것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이번 한국 방문을 통해 6·25전쟁의 현장을 다시 찾으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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