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그해 7월 7일 대전 나들목에서 박정희 대통령, 이한림 건설부 장관, 시공회사 대표와 공사현장 감독 등이 경부고속도로 완전개통을 기념하는 테이프를 잘랐다. 이어 공사가 마지막으로 끝난 대전∼대구 구간을 승용차로 달려가 대구 공설운동장에서 준공식을 가졌다. 대한민국이 1968년 2월 1일 착공해 2년 5개월 만에 완공한 경부고속도로는 세계 고속도로 역사상 최단 시간에, 최저 공사비로 건설한 ‘민족의 길’이었다.
1960년대 한국의 도로 사정은 열악했다. 서울∼대전 구간 국도 1호선조차 곳곳이 비포장이었다. 포장된 구간도 파인 곳이 많았다. 버스로 서울에서 대전까지 8시간, 부산까지 15시간 이상 걸렸다. 물류 처리가 늦어졌고 전국 하루 생활권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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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원 890만 명, 총공사비 429억 원이 투입된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땅이 얼면 짚을 깔고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질러 말렸다. 그래도 안 되면 트럭에 버너를 달고 왕복 운행하면서 공사를 이어갔다. 국가지도자 기업인 공직자들의 통찰력과 신념, 추진력과 현장점검이 근로자들의 피땀과 어우러져 대역사(大役事)를 성공시켰다.
경부고속도로 준공 석 달 전인 1970년 4월 1일엔 포항제철이 착공됐다. 심한 반대를 뚫고 이루어진 두 사업은 정치적으로는 권위주의 시대였지만 경제적으론 약진의 10년이었던 1970년대 ‘한강의 기적’을 쏘아올린 신호탄이었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58년 83달러에서 1968년 2배인 168달러로 늘었지만 1979년에는 11년 전의 9배인 1546달러가 됐다. 같은 기간 수출액은 1600만 달러, 4억5500만 달러, 150억5500만 달러로 늘었다. 단기압축 공사의 부작용도 있었지만 경부고속도로의 역사적 의의를 훼손할 정도는 아니다.
올해는 6·25전쟁 발발 60주년, 4·19혁명 50주년, 5·18민주화운동 30주년 등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매듭이 겹치는 해다. 수난과 저항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되지만 세계 최빈국에서 출발해 남부럽지 않은 나라를 만든 도약과 창조의 역사도 기억해야 한다. 보름 앞으로 다가온 경부고속도로 준공 40주년은 이런 계기가 되기에 충분하다. 추풍령과 금강휴게소를 지나는 길에 준공탑과 위령탑에 들러 대한민국의 번영을 위해 헌신한 앞 세대의 고투(苦鬪)를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것도 살아있는 역사교육이 될 것이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