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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의 시대, 전략은 옵션일 뿐… 기업들 트랜스포머가 돼라”

입력 | 2010-06-12 03:00:00

한국경영학회-CEO 포럼
‘기업전략의 새로운 접근’ 토론회




디스플레이+IT+엔터테인먼트
스크린골프, 컨버전스 성공 사례
융합산업 5년내 202조원대 급성장
신제품 개발 발목잡는 법 손질 절실


한국경영학회와 한국CEO포럼이 1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산업융합시대의 전개와 기업전략의 새로운 접근’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동아일보와 딜로이트 컨설팅이 후원한 이 행사에서 전문가들은 컨버전스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훈석 기자


경쟁이 격화되고 업종 간 장벽이 무너지면서 산업과 기술의 융합(컨버전스) 트렌드가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급변하는 시기에 기업이 생존하려면 전략적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불확실한 미래를 섣불리 예단해서는 안 되며 여러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경영환경 변화에 맞춰 빠르고 유연하게 대처해야 조직이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영학회와 한국CEO포럼이 1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개최한 ‘산업융합시대의 전개와 기업전략의 새로운 접근’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컨버전스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 무엇보다 시나리오적 사고와 유연한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딜로이트 컨설팅 후원으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는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 최경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정수진 AEA인베스터즈 자문역, 김억 딜로이트 컨설팅 이사 등 경영학계와 산업계 임원 80여 명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참석자들은 경영환경이 급변하고 있어 하나의 정답만을 예측하고 전략을 수립해 자원을 집중 투입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래의 성장은 외부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고 다른 기업들과 협력함으로써 다양한 기술과 제품, 사업 영역을 창조적으로 결합하는 데서 온다는 주장이다. 또 산업 융합을 뒷받침할 정부의 법령과 정책이 선진국보다 5년 이상 뒤떨어져 있어 한국 기업들이 상용화 및 표준화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 21세기는 융합의 시대

김 대표는 기조 발제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주로 기술과 기술의 결합 또는 제품과 제품의 결합이라는 의미로 활용돼 왔던 컨버전스의 범위가 시장, 산업, 학문 등 모든 영역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기술(IT)과 출판업을 결합한 아마존 킨들과,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에 콘텐츠와 유통망까지 결합한 애플 아이폰이 대표적 성공 사례다. 이제는 다양한 기술과 콘텐츠, 산업 간의 창조적 결합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융합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됐다.

김 대표는 “애플 아이폰은 제품 자체 시장뿐 아니라 앱스토어라 불리는 콘텐츠 시장을 창출했다”며 “2008년 애플의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판매량 기준으로 3%에 불과했지만 매출 기준으로는 15%, 영업이익 기준으로는 40%를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애플이 보유한 자체 핵심 제조 기술은 없지만 외부의 기술과 디자인, 아이디어를 창조적으로 결합해 감성적 가치를 극대화했다는 주장이다.

김 대표는 국내에서 융합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로 스크린골프를 꼽으며 “스크린골프는 한국이 앞서 있는 디스플레이 기술, 센서기술 등 IT와 엔터테인먼트, 공간 활용까지 융합해 연 1000억 원에 달하는 시장을 창출했다”고 말했다.

딜로이트 컨설팅에 따르면 향후 융합산업 시장은 2005년 277억 달러(약 34조 원) 규모에서 2015년 1628억 달러(약 202조 원) 규모로 6배 가까이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중 IT와 나노기술(NT)의 융합이 창출할 시장의 규모만도 980억 달러(약 122조 원)에 달할 것이란 예상이다.

○ 유연한 전략과 협력 마인드가 성공의 열쇠

김 대표는 “융합을 통해 변화하는 산업 구조 속에서 새로운 경쟁 구도가 발생하며, 이는 시장 간 경쟁과 기업군 간의 경쟁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만 하더라도 애플의 앱스토어 진영과 구글의 안드로이드 진영 간 경쟁으로 전개되고 있다. 즉 개별 기업 간 경쟁이 아니라 여러 기업의 연합군 간의 경쟁이다.

김 대표는 “이런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특정한 예측을 근거로 전략을 수립해 실행하다 보면 예측이 틀렸는데도 전략을 계속 실행하는 ‘전략적 모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미래의 전략적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전략을 옵션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이사는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융합의 시대에 적응 발전하기 위해서는 내부의 기술 자원과 외부의 지식 자원을 결합해 새로운 혁신모델을 창출하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많은 돈과 시간을 쏟아야 하는 ‘하이테크(high-tech)’보다는 내부와 외부의 기술과 서비스를 잘 엮어서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 내는 ‘하이패키징(high-packaging)’ 시대라는 설명이다.

기업의 융합 전략에 대해 정 자문역은 “융합의 실마리를 기업 내부에서부터 찾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며 “한 회사 내에도 다양한 기술과 제품이 존재하는데 이를 융합하기 위한 임직원 간의 협업과 최고경영진의 독려, 인센티브 체계가 미흡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사실 기업 내 융합도 어려운 상황에서 계열사 간 융합, 나아가 외국 기업까지 포함하는 외부 협력사와의 융합을 추진하기는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융합 만능주의의 부작용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최 교수는 “단순한 기능 결합과 융합은 구분해야 한다. 여러 가지 기능들을 물리적으로 모아놓으면 오히려 꼭 필요한 핵심 기능의 사용이 불편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스마트폰에 멀티게임플레이어를 결합시켰으나 오히려 핵심인 통화 기능이 불편해져 소비자의 외면을 받은 노키아의 ‘N-Gage’를 들었다. 또 TV에다 프린터 기능을 넣는 것과 같이 비용만 올라가고 소비자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사례도 지적했다. 최 교수는 “기술 선점과 표준 선점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최고의 기술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기업 전략에서 융합 트렌드는 ‘기술 공학’보다는 ‘소비 과학’ 측면에서 접근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법령이 발목을 잡아서야

김 이사는 “선진국들은 이미 융합 산업을 미래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인식하고 융합 기술 개발과 육성을 위한 신산업정책을 강화하고 있다”며 “정책과 법령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에 비해 5∼10년 뒤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2002년부터 ‘인간 수행능력 향상을 위한 융합기술 정책’을, 유럽은 2004년부터 ‘유럽 지식사회를 위한 융합기술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융합 신제품 및 서비스는 빠른 속도로 개발되고 있으나 관련 법 규정이 없어 오히려 융합 신제품 창출에 장애가 되는 사례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위그선은 선박과 항공기의 특성이 결합된 해상 운송 수단으로 해수면 1∼4m 위를 시속 200∼300km로 날아다니는 미래형 선박이다. 그러나 위그선은 현행법상 선박으로 분류돼 있을 뿐 계류시설이나 관제시스템 등 운항과 관련한 법령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아 상용화가 지연되고 있다. 당뇨폰은 실시간 혈당 측정과 운동 및 투약 관리 서비스까지 가능한 휴대전화다. 2004년 한 휴대전화 제조사가 당뇨폰을 개발하는 데 성공해 실시간 관리가 요구되는 당뇨병 환자에게 큰 가치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런데 현행법상 당뇨폰은 의료기기로 분류돼 당뇨폰을 제조하거나 판매하려면 의료기기 업자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일반 휴대전화 매장에서 판매할 수도 없다.

김 대표는 “융합은 한국 경제가 당면한 ‘너트 크래커’ 상황을 돌파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경제는 중국 및 개도국의 저가 수출 확대와 기술 경쟁력을 보유한 선진국의 견제로 독자적 가치 창출이 어려운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그런데 융합은 기존 기술 및 제품, 서비스, 산업의 창조적 재조합을 통해 가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기술 개발에 필요한 돈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융합 트렌드에 제대로 대응하면 한국이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극복하고 다른 개도국과의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인재 기자 epicij@donga.com


▶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

“융합은 한국 경제가 당면한
‘샌드위치’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기회다.”






▶ 최경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단순한 기능 결합이 아니라
소비자 시각에서 접근해야
성공할 수 있다.”






▶ 정수진 AEA인베스터즈 자문역

“기업 내부의 기술과
제품을 융합하는 데서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 김억 딜로이트 컨설팅 이사

“내 외부 지식 자원을 결합해
혁신모델을 창출하는 능력이
핵심 경쟁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