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北, 경제 요직에 黨실세 전면 배치

입력 | 2010-06-08 03:00:00

■ 내각 대대적 개편




순수 경제관료, 희생양으로
화폐개혁에 성난 민심 잡고 노동당 중심 경제난 극복 의지


장성택 거쳐 김정은 옹립?
경험 부족한 3남 정은 대신 張 과도적 최고지도자 유력


북한이 7일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대대적으로 단행한 국방위원회와 내각 인사는 정치적으로는 ‘3대 세습’을 성공시키고 경제적으로는 화폐개혁 이후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두 가지 핵심 국가과제를 염두에 둔 과감한 인적 쇄신 조치라고 볼 수 있다.

○ 장성택 북한 2인자로 급부상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국방위 부위원장에 오르며 권력의 2인자임을 공식화함에 따라 그가 유사시 북한의 최고권력자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일각의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탈북자 출신인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해 10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브루킹스연구소 초청 강연에서 “북한의 권력승계는 김정일 이후 곧바로 3대 세습으로 가기보다는 장성택에 의한 과도기적인 승계가 가장 유력해 보인다”고 전망했다. 나이가 어리고 능력과 경험이 부족한 김 위원장의 3남 김정은을 대신해 김일성 주석의 사위이자 김 위원장의 매제인 장 부장이 과도기적으로 최고지도자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동안 김정은의 후원자 역할을 했던 이용철 이제강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올해 4월과 6월 잇달아 사망하면서 후계구도 구축과 관련한 장 부장의 입지는 한층 강화된 상태다. 장 부장은 국방위 부위원장이 됨으로써 김 위원장 생전에 김정은의 후계체제 구축을 돕는 기능적인 후견인 역할을 하거나 김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유고 때 권력을 장악해 단기간에 후계체제를 완성하는 역할을 더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장 부장은 2008년 하반기 이후 북한의 모든 중요 정책 현안에 개입하며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올해 2월 장 부장이 화폐개혁 실패에 따른 북한의 사회 경제적 혼란 수습을 주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장 부장은 올해 5월 3∼7일 김 위원장의 다섯 번째 중국 방문을 수행했으며 평양시 주택 10만 채 건설사업과 신의주 경제특구 개발사업 등 중요한 경제사업도 직접 관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 부장의 부위원장 승진에 따라 북한의 국가 최고지도기관인 국방위의 부위원장은 종전의 이용무 차수,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오극렬 부위원장 등 3명에서 4명으로 늘었다. 일반 국방위원의 수는 올해 5월 14일 김일철 전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의 해임과 장 부장의 승진에 따라 종전의 8명에서 6명으로 줄었다.

○ 내각 경제통에 당 관료 포진

북한 지도부는 이번 인사를 통해 내각의 경제 관련 수장들을 화폐개혁 및 인민경제와 관련한 주요 경제정책 실패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올해 2월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에 대한 인사 조치를 단행한 데 이어 내각에도 책임을 물은 것이다. 김영일 총리는 올해 2월 16일 김 위원장의 생일을 기념한 중앙보고대회 주석단에 나타나지 않아 일찍부터 경질설이 나돌았다.

북한 지도부는 기술관료(테크노크라트)들이 장악하고 있는 내각의 경제요직에 70, 80대 고령의 노동당 인사들을 전면에 포진시켰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노동당의 지도를 통해 경제난을 극복하겠다는 북한 지도부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영림 신임 총리(81)는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정치엘리트인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당내 서열 10위 이내의 실력자다. 김일성 주석의 책임서기(비서실장)를 세 차례나 지내고 1990년 국가계획위원장을 지낸 경제엘리트이기도 한 그는 지난해 7월 9년째 공석이었던 평양시 당 책임비서로 임명될 만큼 김 위원장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30일 평양에서 열린 ‘천안함 사건 규탄 10만 군중대회’에서 보고자로 나서기도 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전 총리인 김영일과 박봉주는 노동당에는 직책이 없는 순수 경제 관료여서 당의 견제를 받았다”며 “인민생활 향상에 주력하겠다는 올해 신년공동사설을 뒷받침한다는 모양새를 갖추려 실세 총리를 임명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 신임 총리는 평양시 당 책임비서도 지낸 만큼 강성대국의 문을 열겠다는 2012년까지 평양시를 새롭게 단장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북한의 인사는 국내 여론 관리용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북한 지도부가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경제관료 출신들을 경질하고 보수적인 노동당 인사들을 내세운 것은 북한이 개혁 개방과는 거리가 먼 사회주의적 계획경제의 복원이라는 기존의 경제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임을 보여주는 증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김락희 부총리, 김정일 동생 김경희 통해 경제 직언 ▼
강능수 부총리, 주민 선전선동 전문가 이례적 중용
박명철 체육상, 역도산 사위… 金위원장 말동무 노릇


북한이 7일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단행한 내각 인사 중 주목되는 인물은 새로 부총리로 기용된 김락희 황해남도 당 책임비서(77·여)다. 김 비서는 지난해 화폐개혁 실패에 따른 물가 폭등과 경제 마비로 인한 인민경제의 파탄 상황을 김경희 노동당 경공업부장(장성택의 부인)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에게 직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인사에 김 위원장의 동생 김경희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조선공보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선전선동을 맡아 온 강능수 노동당 부장(86)의 부총리 임명은 이례적으로 평가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대북 심리전 재개 등 천안함 사건 이후 강화되는 대북 압박에 대응해 주민을 단속할 필요성이 높아졌다는 방증”이라고 해석했다. 강 부장은 올해 초 해임된 것으로 알려진 최익규 노동당 선전선동부장의 후임으로 임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강 위원장은 2008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미국 교향악단 최초로 평양에서 공연했을 당시 문화상을 지냈다.

체육상에 임명된 박명철 국방위원회 참사(69·사진)도 눈에 띈다. 김 위원장의 말동무이자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박 참사는 일본 프로레슬링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역도산의 사위다. 국방위 부위원장에 오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된다. 이번에 부총리에서 물러난 박명선의 오빠이기도 하다. 북한 지도부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등 스포츠 이벤트를 체제 유지에 활용하기 위해 기존 체육지도위원장 자리를 체육상으로 승격한 것으로 보인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