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셰익스피어 페스티벌가장 인상적인 3작품 분석
《루마니아 남부 인구 30만의 소도시 크라이오바는 지난 2주간 ‘햄릿’의 무대인 덴마크의 엘시노어 성이 됐다. 밤마다 유령이 출몰했고 수백 년 전 죽은 덴마크 왕자를 불러내는 주문이 들려왔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사물놀이-탈놀이 접목
씻김굿 양식 원한 풀이
네크로슈스의 햄릿
수증기-물-얼음 상징성
고통받는 인물내면 표현
오스터마이어의 햄릿
배불뚝이 ‘루저’로 그려
허무주의 짙게 드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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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과 안개
이윤택의 햄릿은 한국적 사물놀이와 탈놀이를 극중극 형식으로 접목한 해학적 햄릿이자 씻김굿 양식을 가미한 해원(解寃)의 햄릿이다. 동시에 ‘흙의 햄릿’이기도 하다. 햄릿(지현준)은 무덤 파는 무덤지기(김미숙)와 무덤용 황토흙 위에서 죽음에 대한 유희를 펼친다. 레어티즈(염순식)가 무덤 속 오필리어(배보람)를 안고 “흙을 쌓아 올려라,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똑같이”라고 하자 그들의 얼굴과 온몸에 인정사정없이 흙이 뿌려진다. 에필로그에선 무대 전체가 황토색 천으로 서서히 덮인다. 호레이쇼(김미숙)가 이끄는 광대들의 구음(口音)을 따라 극중 살해된 인물들이 흙 범벅의 얼굴에 황토색 수의를 입은 채 하나 둘씩 무덤구멍을 뚫고 나타난다.
이번 공연에서는 여기에 햄릿의 내면을 상징하는 안개가 더해져 한층 두터운 텍스트를 구축했다. 햄릿과 노르웨이 왕의 조카 포틴브라스가 만나는 장면, 햄릿이 기도 중인 클로디어스를 죽이려다 포기하는 장면, 미친 오필리어가 그들 사이를 유영하는 장면 등이 무대 위에 거의 동시에 펼쳐졌다. 세 햄릿의 충돌을 형상화한 것이다. 햄릿의 과거(아버지/삼촌), 현재 그리고 미래(포틴브라스)의 충돌이자 햄릿 내면의 이드(아버지/삼촌), 에고(햄릿), 슈퍼에고(포틴브라스)의 충돌이다. 역대 3명의 햄릿인 이승헌(2대), 지현준(3대), 윤정섭 씨(4대)가 각각 아버지/삼촌, 햄릿, 포틴브라스로 출연한 것 역시 이를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
○ 물과 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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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을 물화하는 데 귀재인 네크로슈스는 수증기와 물, 얼음으로 비가시적인 유령의 세계와 고통 받는 햄릿의 내면을 표현한다. 천장에서 뿜어져 나온 수증기가 무대 중앙에 매달려있는 원형 톱을 만나 물방울이 되어 북 위로 떨어진다. 톱이 동생이 형을 독살하는 끔찍한 세상을 상징한다면 북소리는 그 톱날에 희생된 유령의 신음소리다. 기체상태의 수증기/안개가 유령의 형상이라면 물방울은 그 액체상태의 슬픔이다. 고체상태인 얼음은 유령의 원한과 그로 인한 고통을 상징한다.
○ 비디오카메라
오스터마이어의 햄릿(라스 아이딩어)은 ‘루저’다. 배불뚝이에 뒷머리까지 살짝 벗겨진 이 햄릿은 왕자가 아니라 갱단 두목의 아들쯤으로 그려진다. 그는 타락한 세상에 대한 분노보다는 그런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 무력한 자신에 대한 모멸감으로 패악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펼친다. ‘늙고 병든 유럽’에 절망한 유럽 젊은이의 초상이다.
세상에 대한 그의 야유 중 하나는 욕망의 노예가 된 주변 인물의 추악한 모습을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이다. 무대 좌우로 깔린 레일 위의 이동무대에 설치된 반투명막을 통해 그 영상이 비친다. 반(反)휴머니즘과 허무주의가 짙게 배어 있다. 올가을 서울에서 열리는 씨어터 올림픽스 참가작으로 10월 1∼3일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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