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최근 공개한 ‘201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기초 분석’ 결과에 따르면 남녀공학은 언어, 수리, 외국어 모든 영역에서 남고 및 여고보다 표준점수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언어영역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여고(104.5점)와 남녀공학(98.8점) 간 점수차는 무려 5.7점이었으며 수리 나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남고(102.2)와 남녀공학(98.0점) 간엔 4.2점 차가 났다. 왜 이런 결과가 발생했을까? 남녀공학의 학습 환경이 특별히 열악할 일도 없을 텐데 말이다. 남녀공학에 다니는 고교생들은 “남고나 여고에 다니는 학생보다 외모에 신경 쓰는 시간이 많을 뿐 아니라 남고나 여고생들은 한 번도 겪지 않을 법한 문제를 겪기도 한다”고 전한다. 남녀공학에서 학습을 저해하는 요소들은 뭘까? 또 이런 요소들을 지혜롭게 극복하는 방법은 뭘까?》
수능 주요영역 평균 성적 낮아… 학생들이 말하는 고민
남녀공학 고교생들은 남고나 여고에 다니는 학생들보다 외모 관리에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게 현실이다. 고3 이모 양(18·서울 서대문구)은 “남학생들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다보니 꼭 이성 친구를 사귀지 않더라도 깔끔한 외모와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신경 쓰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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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양이 친구보다 평일 아침에 더 사용하는 시간은 매일 약 45분. 일주일이면 3시간 45분(주말 제외), 1년이면 187시간 30분(방학 기간 포함)을 더 쓰는 셈이다.
이런 현상은 여학생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고3 이모 군(18·전남 영광군)은 “등교 전뿐 아니라 쉬는 시간마다 거울 앞에 서서 짧은 머리에 왁스를 발라 ‘스타일링’을 한다”면서 “남고에 다니는 친구들에 비해선 외모에 시간을 더 투자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남녀공학 고교생들은 외모 관리뿐 아니라 교과서나 노트를 예쁘고 깔끔하게 관리하는 데도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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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생이 노트를 빌려갔을 때 깔끔하게 정리돼 있지 않고 엉망이면 남학생들 사이에서 ‘○○은 글씨체도 엉망이라 성격도 지저분할 것 같다’는 소문이 날까봐 신경이 쓰여요. ‘어떻게 하면 글씨가 더 깔끔하고 예뻐 보일까’에 집중하다 보면 본래 필기한 내용을 다시 베껴 쓰면서 복습하는 효과가 생기기는커녕 필기 자체가 스트레스로 느껴져요.”
심지어 수행평가 때도 외려 ‘본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일쑤라는 게 적잖은 남녀공학 고교생들의 증언이다. 이성 친구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를 신경쓰다 보니 수행평가 때 위축되기 쉽다는 것. 체육과목 농구 수행평가 때 여학생들이 예쁘게 보이려고 소극적인 자세로 레이업슛을 하다 모두 실패하거나 음악 수행평가 때 ‘음 이탈’을 우려해 작은 목소리로 소심하게 노래를 부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남녀공학에서 수행평가에 대한 스트레스는 여학생보다 남학생이 더 심하게 느끼기도 한다. 남녀공학에 다니는 고2 한모 군(17·서울 서초구)은 지난해 국사 과목 수행평가에서 ‘삼국시대 때 국가별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왕을 정하고 그 이유와 특징을 정리해 제출하라’는 과제를 받았다. 이는 2학기 기말고사 점수의 20%를 차지하는 중요한 수행평가. 거의 2, 3일을 과제수행에 투자한 한 군. 그러나 막상 과제를 제출하는 날 그는 같은 반 여학생들이 해 온 수행평가 결과물을 보고 좌절했다. 다음은 한 군의 하소연.
“내가 사흘 동안 한 것보다 여학생들이 하루이틀 만에 ‘뚝딱’해 낸 과제물이 비교도 안 될만큼 좋아보였어요. 표지엔 사진도 넣었고 내용도 훨씬 꼼꼼하고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어요. 물론 선생님이 남학생과 여학생의 차이를 감안해 점수를 주시지만 여학생들의 수행평가 결과물을 보면 나 자신이 참 한심하고 무능력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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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남녀공학에 다니는 일부 깔끔한 여학생들은 기온이 본격적으로 높아지면서 교실에 진동을 하는 남학생들의 땀 냄새와 발 냄새 때문에 공부에 전념할 수가 없다고 푸념한다. 남녀공학 고2 김모 양(17·경기 안산시)은 “남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농구를 하거나 복도에서 한껏 뛰놀다 교실로 들어오면 온 교실에 땀 냄새가 가득해 숨을 쉴 수가 없다”면서 “냄새가 수업시간 내내 나서 집중을 못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승태 기자 st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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