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2년간 바다밑 훑어 기뢰파편 찾았다’고 알려진 코르푸 해협 사건
가해자는 확인했나
알바니아 기뢰매설 증거없어
주의조치 안한 책임만 물어
배상판결 실효성 있었나
알바니아 40년 넘게 무시
공산정권 무너진 뒤 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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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뢰로 깔린 알바니아 앞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6년 5월 영국 해군 함정 2척이 코르푸 해협으로 접어들었다. 이 수역은 공산진영 알바니아와 자유진영 그리스령 코르푸 섬 사이의 좁은 해협이었다. 이때 알바니아 해안 진지에서 포탄이 날아들었다. 피해는 없었지만 영국은 사과를 요구했고, 알바니아는 “영해 침범”이라고 맞섰다. 냉전 초기의 긴장상태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었다.
같은 해 10월 영국 해군은 알바니아 군의 공격 의도를 확인하기 위해 구축함 2척, 순양함 2척으로 구성된 함대를 코르푸 해협에 파견했다. 이 해협을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던 구축함 소머레즈호가 사란더 만(彎) 앞바다에서 기뢰를 건드려 함수 부분이 날아갔다.
1946년 10월 22일 영국 해군 구축함 소머레즈호가 코르푸 해협을 지나다 기뢰를 건드려 함수 부분이 폭발하고 물기둥이 하늘로 치솟고 있다. 사진 출처 BBC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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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알바니아에 “코르푸 앞바다의 기뢰 매설 여부를 확인하겠다. 남아 있는 기뢰를 수거해 기뢰 매설 국가를 밝혀내겠다”고 선포했다. 영국 해군은 알바니아의 발포 경고에도 불구하고 1946년 11월 이 지역에서 계류기뢰 22개를 수거했다. 계류기뢰는 수면 위의 기뢰 밑에 달린 닻이 바닥에 고정된 방식이다.
영국 해군은 조사 끝에 기뢰가 독일제 GY타입이며, 기뢰 표면이 깨끗하게 페인트칠이 된 점 등으로 볼 때 기뢰가 얼마 전에 설치됐다는 점을 확인했다. 또 영국은 반파된 구축함 볼라지호 내부에서 기뢰 파편을 찾아냈고, 이 파편이 GY타입과 유사하다는 점도 확인했다.
결국 천안함 침몰 이후 일각에서 “우리도 영국 해군처럼 백령도 인근 바다 밑바닥을 훑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사실관계를 잘못 알고 나온 것임을 확인해준다.
○ 유엔 안보리 소집…ICJ의 첫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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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J는 심리 결과 알바니아에 대해 “영국에 209만 달러를 물어주라”는 배상 판결을 내렸다. 알바니아가 기뢰를 매설했다는 직접적 증거는 없었던 만큼 가해자가 누구인지는 가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ICJ는 “해안 진지와 아주 가까운 자기 영해에서 다수의 기뢰가 설치된 것을 알면서도 영국 해군에 적절한 주의를 주지 못한 책임이 있다”며 배상을 판결했다.
여기에 재판관 16명 가운데 11명이 찬성했다. ICJ는 다만 영국 해군이 알바니아 영해에 무단으로 진입해 기뢰를 제거한 것은 불법이었다고 만장일치로 판시했다. ICJ가 창설된 뒤 처음으로 심리한 사안은 이렇게 종결됐다.
하지만 알바니아는 재판 내내 소송대리인을 내세우지 않은 채 재판을 보이콧했고, 이후 40년 이상 배상금 지불을 거부했다.
이 사건은 알바니아 공산정권이 무너진 뒤 1991년 영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면서 해결됐다. 알바니아는 이자 없이 209만 달러를 영국에 지불했고,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로부터 되찾은 알바니아 소유 금괴를 알바니아에 돌려줬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