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지대/헤르타 뮐러 지음/김인순 옮김 ·268쪽/1만500원·문학동네◇ 숨그네/헤르타 뮐러 지음/박경희 옮김·352쪽/1만2000원·문학동네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는 죽음에 가까운 공포와 불안 속에 살고 있는 수용소 사람들의 참상을 신비로운 언어로 그려낸다. 어둡고 캄캄한 고통 속에서도 이들의 삶은 계속된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 화가 조지 프레더릭 워츠의 ‘희망(Hope)’. 사진제공 문학동네
단편소설집 ‘저지대’는 그가 1982년 출간했던 데뷔작이다. 사회주의 독재체제였던 당시 루마니아에서 이 책의 일부는 검열 때문에 삭제된 채 출간됐다. 독일계 루마니아 소수민족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작가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의 감시와 압박이 심해지자 독일로 망명했다. 이 책에는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 유년시절의 기억이 반영돼 있다.
이 작품집은 표제작인 ‘저지대’를 비롯해 19편의 짧은 이야기로 엮여 있다. 주로 독일계 소수민족이 사는 루마니아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가난과 노동, 관습 등에 짓눌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유려한 언어와 상징적인 이미지로 묘사한다. 마녀의 촛불처럼 갈대숲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허공을 쪼아대는 까마귀들, 언제나 같은 노래를 부르는 새들과 이따금 스산하게 아름다워지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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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노벨문학상 헤르타 뮐러
데뷔작-최신작 국내 첫 소개
독재치하 암울한 일상…
수용소 처절한 생존본능…
유려하고 함축된 언어로 그려
‘잉게’는 모든 사람이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이라고 말하고 다닐 만큼 군사주의문화가 만연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거리는 군인과 경찰이 가득하고 사람들에 대한 은밀한 감시는 사적인 공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또 ‘의견’에서 독재정권하의 파시즘과 부조리를 이렇게 폭로한다.
“잘못된 의견은 아예 의견이 없는 것보다 훨씬 나쁘며, 결코 그 어떤 의견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 의견이 아예 없는 것도 하나의 의견이고, 심지어 많은 사람의 의견이며, 올바른 의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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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급된 양배추수프와 빵을 한 숟가락, 한 점이라도 아껴먹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 그 구차하고 지독한 굶주림,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느끼는 공포와 불안 등을 함축적이고 밀도 높은 언어로 핍진하게 그려냈다. 시대의 과오와 역사의 부조리 속에 희생된 이들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증언하는 뮐러의 작품들은 이 시대 문학의 직능을 다시금 고민하게 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