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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 양(13) 살해사건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피의자 김길태 씨(33)에 대한 현장검증도 16일 끝났다. 하지만 현장의 시민들은 “경찰이 초동수사만 제대로 했어도 끔찍한 일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6일 이 양의 시신이 발견된 후 경찰의 수사가 허술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경찰은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순간마다 실수를 연발했다. 이 양은 지난달 24일 오후 7시 이후 부산 사상구 덕포동 집에서 납치됐고, 오후 10시 50분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 눈이 나쁜 이 양의 안경과 휴대전화가 집에 그대로 있었고, 집 주변에서 남성의 발자국이 발견됐는데도 수색은 다음 날부터 이뤄졌다. 이후 경찰은 이 양의 시신을 찾는 데 10일이나 걸렸다. 시신은 이 양의 집에서 50m 떨어진 물탱크에서 발견됐다.
주민의 제보에 안이하게 대처한 대목도 있다. 1월 23일 김 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K 씨(22·여)가 당일 경찰에 신고한 후 김 씨와 그의 옥탑방을 특정하기도 했다. 당시 경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했다면 이 양은 살았을 수도 있다. 이 양의 시신이 발견될 당시 김 씨가 현장 부근에 있었다는 한 여고생의 제보, 현금이 자꾸 없어진다는 인근 주민의 제보 등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 검거 기회를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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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경찰들은 “시민들이 제대로 신고를 해주거나 진술을 해주면 수사가 원활한 경우가 많은데 너무 안 해줘 힘들다”고 토로한다. 신고와 제보를 안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경찰들은 팽배해진 ‘귀차니즘’과 ‘막연한 두려움’을 원인으로 꼽았다. 서울 혜화경찰서의 한 경찰관은 “목격자의 진술을 받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며 “대부분 경찰이나 법정에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 귀찮아 지인이 아닌 이상 진술을 안 해 준다”고 말했다.
신고자나 증인에 대한 보복범죄가 한 해 3000건이나 발생한다. 따라서 신고나 제보를 했을 때 충분한 보상과 신변안전을 철저히 보장하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내가 신고를 망설이는 사이 누군가 또 피해를 볼 수 있고, 내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오늘 출퇴근길에 지하철 안, 도로 위에서 폭행 상황이 발생하거나 누군가가 쓰러져 있다면…모두 용기를 내보자.
김윤종 사회부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