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회의원들은 전반적으로 법 만드는 것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18대 국회 들어 이달 12일까지 발의된 법안은 모두 7430건이다. 이 중 의원 발의 법안이 6456건(87%)이니 의원 1명당 평균 22건씩 발의한 셈이다. 언뜻 보면 의원들이 참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게 아니다. 의원 발의 법안 중 가결 처리된 것은 10.5%인 681건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폐기(1174건), 철회(432건), 부결(2건)됐거나 계류(4167건) 중이다. 계류 법안이 이렇게 많으니 국회가 처리에 늑장을 부리고 있는 걸로 생각하는 국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중 태반은 처리될 수 없거나, 처리돼서는 안 되거나, 다른 법안과 중복되는 이른바 ‘정크(쓰레기) 법안’들이라고 국회 관계자는 말한다.
구멍이 숭숭 뚫린 법안이 가결 처리된 뒤 시행할 때쯤에야 허점이 발견되는 경우도 많다. 비정규직법처럼 여야 간 정쟁 탓에 기형적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있다. 미처 다른 법과의 관계를 제대로 따지지 못해 실효성이 없는 것들도 있다. 법이 법치의 무게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상임위 차원에서는 그럭저럭 논의를 한다지만 다른 의원들은 내용도 모른 채 표결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오죽했으면 본회의에 법안을 상정할 경우 그 내용을 개의 24시간 전까지 모든 의원에게 통지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까지 발의됐겠는가. 한나라당 이성헌 의원이 13일 “의원 발의 법안도 정부 입법안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입법예고를 거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법은 건축물의 설계도나 전자장치의 프로그램과 같은 것이어서 잘못 만들면 붕괴나 오작동을 초래한다. 국민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가결에 앞서 법안의 이모저모를 꼼꼼히 따질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의 가장 중요한 본분은 ‘좋은 법’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최고의 정치요, 자신을 뽑아준 국민에 대한 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