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철학올림피아드 국내예선 금상 김태헌 군왜? 그래서? 자문하며 생각의 지평 계속 넓혀책 한 권을 읽는 데 한 달 걸릴 때도 있어요
한국외국어대부속용인외고 3학년 국제반 김태헌 군(18)은 우선 문제 속에서 ‘현실’ ‘환상’ ‘꿈’ ‘분간’이란 키워드를 골라낸다. ‘세 가지를 구분하기에 앞서 현실, 환상, 꿈 간의 공통점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고민한 김 군. 문제에서 골라낸 키워드로부터 자신의 고민에 대한 답을 찾고, 이를 다시 여러 개의 키워드로 정리한다. 김 군은 철학자들의 사상을 마구잡이로 인용하기보단 ‘imagination’ ‘dream’ ‘vivid’ ‘have something in common’ 등 자신이 생각해 낸 키워드를 연결하며 생각을 문장으로 완성시켰다.》
1월 10일 치러진 제18회 국제철학올림피아드(IPO) 국내 예선에서 금상을 수상한 김 군이 문제를 접하고, 생각하고, 글로 표현하기까지의 과정이다. 김 군은 “내 생각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어 대회에 참여했다”면서 “상을 받은 것도 좋지만 문제가 물어보는 질문을 정확히 파악하고, 내 생각을 명확히 표현한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광고 로드중
김 군은 어려서부터 엉뚱한 생각을 많이 했다. 김 군은 “매일 잠자기 전 침대에 누워 ‘우주의 끝은 어디일까’ 등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이 즐거웠다”면서 “당시 생각에 그치고 답을 낼 수 없다는 사실이 무척 답답했다”고 말했다.
이런 답답함은 초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점차 해소됐다. 학교공부를 통해 생각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배경지식이 쌓이기 시작한 것. 초등학교 3학년 때 ‘생각’을 연구하는 ‘철학’을 알게 된 후에는 관련 책을 사서 읽는 등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김 군이 자신의 생각에 대한 답을 얻는 주된 방법은 독서다. 그는 “문학 작품도 결국 개인의 생각을 글로 표현한 결과물”이라며 “단순히 책을 읽고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내 생각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김 군은 ‘다독(多讀)’보단 ‘정독(精讀)’을 즐긴다. 3∼5쪽을 읽고 책의 내용을 곱씹고 작가의 생각을 파악하기를 반복한다. 그러다보니 책 한 권을 읽는 데 한 달이 걸리기도 한다. 그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광고 로드중
천천히 생각하며 읽는 독서습관은 학교 공부에도 도움이 됐다. 예를 들면 세계사 책을 보다가 ‘아랍에는 다양한 종교가 공존한다’란 부분에서 잠시 멈춘다. 그리곤 ‘종교가 공존하게 된 원인이 뭔지’ ‘그래서 발생한 사건이 무엇인지’ ‘그 사건은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차분히 다시 생각하는 것. 김 군은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이야기에 빠져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 계속 책을 읽을 때가 있다”면서 “책 읽기를 잠시 멈추고 사건의 인과관계를 되짚어보면 암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김 군은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잘 표현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김 군은 어렸을 때 미국에서 익힌 영어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일상에서 영어로 말하고 쓰는 연습을 꾸준히 해 왔다.
김 군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아이디어 노트’를 만들었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영어로 노트에 기록한 것. 지난해 여름방학에는 ‘사람들은 사물을 묘사할 때 어떤 표현을 쓰나’에 관심을 갖고 관련된 표현들을 정리했다. 김 군은 영국 유명 밴드인 비틀스의 노래 ‘Yellow Submarine(노란 잠수함)’에서 바다를 초록색으로 표현한 부분(Till we found the sea of green)이 흥미로웠다. 이를 적어놓은 뒤 ‘태양이 먼지를 비출 때 우리 눈에 보이는 먼지는 핑글핑글 도는 금빛가루 같다’ 등 응용한 표현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주위에 영어를 잘하는 친구가 많다는 점도 영어 감각을 유지하는 기회로 이용했다. 김 군은 평소 주위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하려고 노력한다. 단순한 일상대화가 아닌 주제가 있는 토론을 하는 것을 즐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영어토론대회에 참가하게 됐고 결과도 좋았다. 지난해에는 한국토론연맹에서 주최한 전국토론대회, 고려대에서 주최한 토론대회에서 우승했다.
광고 로드중
김 군은 요즘 ‘어느 대학에 진학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하지만 그가 이루고 싶은 최종목표는 분명하다.
“호텔경영인이 돼서 모든 나라에 제 호텔을 세우는 게 꿈이에요.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녜요. 세계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많은 사람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돈과 같은 물질이 목적이 아닌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는 것. 정말 매력적인 일 아니겠어요?(웃음)”
이승태 기자 st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