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소설 ‘소현’ 펴낸 김인숙 씨
《“칸의 자리에서 다시 황제의 자리에 오른 홍타이지는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조선을 정복했다.
조선의 임금이 이마를 땅에 부딪혀 항복의 뜻을 전하고 군신의 예를 맺을 때, 소현은 배반하지 않을 것에 대한 아비의 맹세로 볼모가 되었다. 소현은 임금의 아들이었고, 조선의 세자였다.”
병자호란 이후 청에 볼모로 잡혀가 8년여를 머물렀으나 조선으로 돌아온 지 2개월 만에 죽은 비운의 왕세자 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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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자음과모음)은 이상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두루 수상한 중견작가 김 씨가 발표하는 첫 역사소설이다.》
적국에서 겪었을 고독과 슬픔
섬세하고 유려한 문체로 묘사
“영웅 될 수도 좌절할 수도 있는 세상
소현세자는 그 경계에 선 인물”
소설가 김인숙 씨는 “모든 작가가 그렇겠지만 언젠가는 꼭 역사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발표한 역사소설 ‘소현’에서 그는 비감이 감도는 고풍스러운 문체로 비운의 왕세자 소현의 고독을 생생히 펼쳐보였다. 홍진환 기자
섬세하면서도 유려한 문장들은 이 불운의 인물이 느꼈을 외로움과 슬픔에 읽는 이를 깊이 몰입시킨다.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 부근에서 만난 작가는 “참 오래 붙들고, 연애하듯 썼다”고 말했다.
“역사소설을 쓰는 것은 처음인데 각별한 경험이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역사 속 실존인물 속으로 끝없이 몰입해야 했기 때문이죠. 새롭고도 뜨거웠던 그 경험이 짝사랑과도 비슷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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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에 대해서는 첫째로 암살설이, 둘째로 ‘청과 유대관계를 유지했던 그가 조선의 임금이 됐다면 이후 정세가 어떻게 됐을 것인가’라는 가정이 주로 이야기되죠. 개인적으로는 인조가 암살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또 그런 격변의 시대에는 소현이 왕위에 올랐다고 해도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예요.”
그렇다면 소현의 삶이 작가의 관심을 끈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는 “누구나 영웅이 될 수도 있고 좌절할 수도 있는데 소현은 그 경계에 선 인물이었다”며 패전국의 세자로서 세계를 바라보고 자신을 추스르며 버틸 수밖에 없었던 그의 내면이 궁금했다고 말했다.
“역사를 역사서적으로만 보면 잔혹해요. 예를 들어 아버지가 아들을 죽였다는 사실만 남지 그것이 사람이 한 일이란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없으니까요. 과연 ‘왜’ 그랬을까. 그 ‘왜’에 들어 있는 수많은 질문이 한 권의 소설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소설에는 소현세자뿐만 아니라 시대의 질곡과 전쟁의 상처에 부대끼며 비극적 운명을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의 아픔도 함께 배어난다. 자신의 아들을 경계해야 했던 인조나 적국의 왕이라 해서 그 아픔이 없었을 리 없다. 작가는 이들의 상처도 공평히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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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소현세자(昭顯世子·1612∼1645):
조선 16대 왕 인조의 장자. 1625년 세자로 책봉되었고,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조선이 청나라에 항복한 뒤 봉림대군과 함께 인질로 끌려갔다. 청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했다는 이유로 부왕 인조의 의심을 샀으며 1645년 귀국한 뒤 두 달 만에 죽는다. 공식적으로는 병으로 죽었다고 기록돼 있지만 인조에 의한 암살설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