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이는 방학 동안에도 친구들을 자주 집에 불렀다. 헤어질 땐 어김없이 집에 바래다줬다. “혼자 다니지 마라”, “큰길로 다니라”는 조언도 많이 한다. 나영이는 4일 통화에서 “저는 더 다칠 일이 없지만 친구들은 다치면 안 되잖아요”라고 했다.
나영이도 처음에는 알려지는 게 싫었단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관심으로 자신감을 찾았다. 나영이 아버지는 “요즘은 안부전화가 오면 아이가 직접 받아 또박또박 설명한다”고 말했다.
광고 로드중
가정 내 성폭행이라는 예민한 주제다 보니 보호기관 관계자는 “외부에 알려지면 아이가 또 상처를 받는다”고 강조했다. 친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수진이(가명)와는 끝내 만남이 허락되지 않아 방 한 칸을 사이에 두고 전화로 대화를 나눴다.
피해 아동들이 흉악범죄의 피해자로 위로받기보다 또 다른 ‘문제아’로 낙인찍히고, 가해자로부터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신원보호는 지당하다. 하지만 쉬쉬하는 것만이 능사일까.
성폭행 피해 아동들은 자책감에 시달린다. 나영이 주치의였던 신의진 강남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한 아이의 경우 ‘아빠가 밥을 주니까 나는 이거 해줘야 되는 거 아닌가’ 해서 저항을 못하다 뒤늦게 상황을 알게 되면 자기를 탓한다”고 말했다. 4년 동안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수진이도 그 때문에 침묵의 세월을 보냈다.
그런 아이들에게 “네가 당한 일을 감춰야 한다”는 시선은 피해자의 자존감을 더 떨어뜨려 상처를 각인시킨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신 교수는 “상처는 치료 후 공유하는 게 원칙”이라며 “무조건 숨겨주기보단 상처를 극복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광고 로드중
신광영 영상뉴스팀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