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고위당국자, 방북한 굿네이버스 회장에 밝혀단순 불법입북 아닌 체제유지 차원서 다루는 듯
북한의 고위 당국자가 최근 평양을 방문한 남측 민간단체 대표에게 “(불법 입국한 남한 주민 4명을 억류한 것은) 남측 당국이 북측을 전복하려는 세력의 준동을 방치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대북 지원단체인 굿네이버스인터내셔날 이일하 회장은 4일 “이달 1일부터 3일까지 평양을 방문해 남측 민간단체들의 방북 활동을 관장하는 북한 당국자와 남한 주민 4명의 억류 등 최근 남북관계 현안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며 이같이 전했다. 이 회장은 “북측이 남한 주민 4명을 단순 불법 입국이 아니라 체제 유지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 당국자와의 대화 내용을 4일 오전 정부 당국에 전한 뒤 동아일보에 알려왔다.
북측 당국자는 특히 ‘귀측이 억류하고 있다는 남측 주민 4명의 신원을 공개해 달라’는 이 회장의 요구에 “아직 조사 중이어서 밝힐 단계가 아니다”면서도 “4명은 그동안 우리가 공개적으로 밝히지 못했던 여러 사안 중의 하나다. 그동안 ‘검은 쥐’도, ‘흰 쥐’도 있었지만 쥐구멍이 모두 파악됐다. 앞으로 남측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두고 보겠다”고 말했다고 이 회장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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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거칠어진 北, 대화 손길 거두나 ▼
“南인사에 검은쥐도 흰쥐도 있어… 쥐구멍 찾았다
한미연합연습때 전투기 북측 향할 경우 좌시안해”
‘흰 쥐’는 신분을 드러내고 북한에 합법적으로 들어가는 남측 사람을, ‘검은 쥐’는 신분을 숨긴 잠입자를 뜻하며 4명은 후자일 것으로 추정된다. ‘쥐구멍이 파악됐다’는 대목은 이들의 북한 출입이 반복적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따라서 북한은 지난달 8일 인민보안성과 국가안전보위부 연합성명을 통해 남측의 체제 전복 시도에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힌 이후 그 후속 조치로 4명을 붙잡아 억류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북측은 4명의 신원 공개나 처리를 최대한 미루며 남측 당국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경우에 따라서는 북측이 추가 억류 사실을 발표하면서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려던 북한의 노력이 벽에 부닥치는 등 최근 남북 간 대화가 전반적으로 소강상태에 빠져들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최근 북한의 행보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실시한 대남 유화정책 및 평화공세의 끝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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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당국자는 또 8∼20일 실시되는 한미 연합군사연습 ‘키 리졸브’에 대해 “최근(지난달 25일) 인민군 총참모부의 발표 내용은 엄중한 것”이라며 “남한과 미국의 전투기가 비록 공해상일지라도 북측을 향할 경우 이를 공격으로 간주하고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북한 주변의 공해상 무력충돌을 통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그러나 북한 지도부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과 북-미 직접대화, 6자회담 복귀 등 민감한 대외 행보를 앞두고 미국과 중국이 모두 반대하는 한반도의 긴장 조성을 주도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따라서 북한 당국자의 발언은 남한 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기 위한 엄포 또는 협박일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에도 북측이 최근 남북관계에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국제사회의 제재와 북한 내부 정보의 외부 유출 등으로 인해 체제 유지에 민감한 상태임을 표출한 것만은 분명하다. 국내 보수진영 일부에서 “국제사회가 북한발 위기의 가능성을 적절히 관리할 때”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북한 내부의 상황을 감안한 것이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