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 노리는 선배들의 ‘마수’
서 양은 고민 끝에 다음날 문 양을 포함해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 3, 4명에게 전날 일어난 일과 솔직한 자신의 심정을 고백했다. “함께 선배를 찾아가자”는 한 친구의 제안으로 문 양과 함께 3학년 교실을 찾아간 서 양. 문 양은 “‘일진회’에 들어오라”는 선배의 말을 ‘정중히’ 거절했다. 서 양은 “선배로부터 이런 제안을 받은 일 자체가 마치 자신이 나쁜 짓을 한 것처럼 느껴져 아무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는 친구가 많다”며 “선배에게 맞거나 돈을 뺏긴 게 아니라서 선생님이나 엄마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말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 양과 같은 일을 겪는 학생이 적지 않게 생긴다. 일부 중학교 2, 3학년이 ‘양언니’ ‘양오빠’(특별히 친하게 지내는 선배를 부르는 학생들 사이의 은어)를 맺을 목적으로 신입생들을 상대로 ‘콘텍트’에 들어가기 때문. 자신을 대신해 ‘나쁜 일’을 할 후배들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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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사단법인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김혜민 간사는 “학생들이 TV나 일부 매체를 통해 ‘어른사회’에서 나타나는 위계질서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무조건 따라 한다”며 “사춘기를 겪으면서 ‘나도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해져 이런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스스로 학교를 하나의 사회적인 공간으로 인식한다는 것. 때문에 초등학교 때는 ‘누나’ ‘오빠’라고만 불렀던 한두 살 위 학생들이 ‘선배’로 바뀌게 되면서 문제가 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 학교폭력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노벨과개미와 교수닷컴이 2009년 1월 초중학생 156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학교폭력 가해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응답자 중 25%가 ‘선배 학년 학생’이라고 답했다. 또 학생들은 ‘선배가 하는 말은 무조건 복종해야 해’라고 생각하며 부정적인 행동을 당연시하기도 한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중학교 졸업식 모습도 마찬가지. 선배에게 잘 보이기 위해 친구들 사이에서 폭력을 일삼기도 한다.
올바른 선후배 관계를 맺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자녀가 나쁜 선배와 어울리는지에 대한 학부모의 관심이 중요하다. 일반적인 폭력과 달리 겉으로 보이는 상처가 없기 때문에 부모가 알아채기 어렵기 때문. 또 이들은 선배들에게 부당한 일을 당하는 피해자인 동시에 또래 친구들에겐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때문에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경우도 드물다. 학부모들은 △갑자기 친구의 전화를 받고 외출한다거나 △또래 친구들보다 선배와 어울리는 경우가 많다는 등의 행동이 보이면 한 번쯤 나쁜 선배들과 어울리는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생활할 수 있는 봉사활동이나 학습캠프 현장에 참가하는 것도 방법. 한두 살 위 학생들의 행동을 함께 관찰하며 ‘지금 저런 행동은 올바르지 못한 선배가 하는 행동이다’ ‘선배가 무리한 부탁을 할 때는 이렇게 대처해야 한다’ 등을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통해 지도할 수 있다.
학교 내 계발활동(CA)이나 동아리 활동도 도움이 되는 선배를 만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인 고모 씨(30)는 “친구의 소개가 아닌 학교 행사나 동아리를 통해서 선배를 만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이럴 경우엔 선후배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나거나 폭력을 당하는 등 문제가 생겨도 공식적으로 선생님이나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단, 동아리에 가입할 때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자칫 동아리 내 위계질서가 강하거나 나쁜 선배들이 모여 있는 곳에 들어가 수 있기 때문. 동아리에 가입할 때는 △구체적인 동아리 활동 목적이 무엇인지 △봉사활동, 대회 참가 등 대외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지 △지도 교사가 동아리 활동에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지 등을 면밀히 알아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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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태 기자 st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