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약 교사라면 이렇게 가르칠 것이다. 반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파병 찬성과 반대의 역할을 맡겨 일정 기간 연구하게 한 뒤 서로 토론을 시킨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내면 생각이 어느 한쪽으로 굳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찬반 역할을 완전히 뒤바꾸어 다시 한 번 연구와 토론을 하게 한다. 이렇게 하면 이라크와 관련한 수많은 사실(事實)을 알게 될 것이고, 파병 찬반 논란에 대해서도 균형 있는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교육한다면 훗날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사회적 국가적 난제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이를 풀어가는 방식도 지금과는 달라지지 않을까.
식당에서 종업원에게 팁을 주고 안 주고는 취사선택의 문제지만 음식값은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 법을 지키고 안 지키고는 상황에 따라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하는 옳고 그름의 문제, 즉 시시비비(是是非非)의 문제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이라크 파병은 나쁜 것’이라고 가르치는 교사나 법을 어기고도 큰소리치는 강기갑 의원처럼 선택의 문제와 시비의 문제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단순한 판단의 오류 때문일 수도 있지만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념 또는 명분에 전도돼 그럴 수도 있다.
취사선택의 영역에서는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해 최선의 선택을 하면 된다. 타협도 가능하다. 그러나 시시비비의 영역은 다르다. 싸움이 벌어지면 죽기 살기 식으로 극단으로 치닫고, 해결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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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공론의 장(場)을 이용해 선택의 문제와 시비의 문제를 분명하게 가려내고, 되도록이면 싸움을 작게 만들어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정치는 어떤가.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보완하는 식으로 얼마든지 타협이 가능한 선택의 문제를 시비의 문제로 변질시켜 스스로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작은 싸움을 오히려 큰 싸움으로 변질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지는 않은가.
세종시 문제도 시시비비가 아닌, 취사선택의 영역에 속한다고 나는 본다. 원안대로 하든, 수정안대로 하든, 아니면 그 사이에서 어떤 절충안을 택하든 어떤 경우에도 장단점은 있을 것이다. 선택의 문제를 다룰 때는 내 생각만 고집하기보다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가 무엇보다 필요한 법이다. 역지사지가 불가능한 정치인보다 가능한 정치인을 국민이 더 신뢰하는 풍토도 소망스럽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