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공모 심사위원 버그돌 교수“역사적 가치 최대한 살리되현재의 삶과 균형 이뤄야”
“서울이나 뉴욕 같은 빽빽한 도시에 새 건물을 짓는 일은 미술관 큐레이터의 일과 같습니다. 무엇을 포함하고 무엇을 덜어낼지 결정해야 하니까요. 과거의 가치를 100%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옛 가치만 온전히 보존하려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겠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축설계 아이디어 공모전의 심사위원을 맡은 배리 버그돌 미국 뉴욕 현대미술박물관(MoMA) 건축부문 수석큐레이터(55·컬럼비아대 건축사학과 교수·사진)의 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들어설 서울 종로구 소격동 옛 국군기무사령부 터의 기무사 건물에서 지난달 30일 그를 만났다. 버그돌 교수는 이날 여기서 열린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미술관 건축’ 세미나에 주제발표자로 참석했다.
버그돌 교수는 5명의 최우수상 수상자를 1일 오전 발표할 것이라며 “공모 지침에 밝힌 대로 용지에 얽힌 근현대사의 기억을 살리면서 주변 지역과의 단절을 해결한 응모작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했다.
손택균 기자
“남길 가치가 있는 부분은 최대한 살려야 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가치 판단의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어요. 역사적 사연이 복잡하게 얽힌 땅은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독일 베를린에는 거리 곳곳에 나치와 공산주의의 흔적이 남아 있죠. 송두리째 없애거나 그대로 놔둬야 할까요? 흑백논리를 거둔 복합적 전략이 필요합니다.”
이번 공모전 심사위원은 9명. 외국인은 버그돌 교수와 마르코 포가츠니크 이탈리아 베네치아대 건축사학과 교수, 일본 건축가 가즈요 세지마 씨 등 3명이다. 버그돌 교수는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삶이 함께 숨쉬는 공간이 되도록 밸런스를 잡는 것이 내가 초청받은 이유라고 생각한다”며 “한국인 심사위원들이 이 땅의 의미를 매우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건축가나 건축주 한 사람보다는 사회 전반이 다면적 논의를 통해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현재의 건축과 인간이 과거의 가치에 희생되는 일은 피해야 한다고 봅니다. 서울 심장부의 숨은 아름다움이 이 미술관을 통해 세계에 널리 알려질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설계자는 1일 발표될 5명의 최우수상 수상자를 대상으로 한 2차 지명설계경기를 거쳐 5월 말 확정된다. 9월 말 공사를 시작해 2012년 12월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