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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남시욱]태아 임정, 옥동자 대한민국

입력 | 2010-02-01 03:00:00


대한민국 건국 시점이 상하이임시정부 수립의 해인 1919년이냐, 광복 직후인 1948년이냐라는 문제를 둘러싼 광복회와 정부의 갈등은 정부의 후퇴로 일단 봉합됐다. 정부 산하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추진단은 1월 27일 광복회를 방문해 1948년을 ‘대한민국의 수립’으로 표기하려던 당초의 계획을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으로 수정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국호 정한 1948년이 건국의 기준

건국시기 논쟁을 지켜본 심경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일제강점기 광복을 위해 몸을 바친 독립투사와 현재의 대한민국을 세우는 데 헌신한 세력 간에 반목과 갈등이 빚어진 것은 국가적으로 여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광복 없는 건국도, 건국 없는 광복도 다 같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국민이 객관적 사실을 외면하기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3·1운동 후 독립투사들이 수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객관적으로 보면 ‘망명임시정부’ 같은 성격을 부인하기 어렵다. 당시의 임정을 정식 국가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국가의 구성요소가 국민과 영토와 주권의 세 가지라는 국제법의 기초이론을 외면한다. 국제법의 통념을 무시한 ‘나 홀로 식’ 주장은 우리끼리 민족감정은 충족시킬지 몰라도 국제사회에서는 통하기 어렵다.

1919년의 건국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제헌헌법이 전문에서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규정한 것을 근거로 내세운다. 이는 임정의 항일독립투쟁과 정통성을 역사적으로 인정하는 정치적 선언이지 해방정국의 객관적 현실을 규정한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이 1919년에 수립됐다면 임정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용어나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는 용어에는 문제가 있다. 동일체가 동일체를 계승한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며 재건 역시 이상한 표현이다. 임정 당시의 대한민국은 현 대한민국의 원형이라고 해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잉태하여 임정시기의 태아기를 거쳐 1948년에 옥동자로 태어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제헌국회에서 국호를 채택할 무렵의 상황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해공 신익희가 주도한 행정연구회는 국호를 ‘한국’으로 주장했고, 유진오는 처음에는 ‘조선민주공화국’을 주장하다가 나중에는 ‘한국’으로 바꿨으며 한민당은 ‘고려공화국’을 주장했다. 중간파인 김규식 및 여운형의 시국대책협의회도 전에 ‘고려공화국’을 주장했다. 임정 초대 대통령을 지낸 제헌국회 의장 이승만은 개원식에서 ‘대한민국 독립민주국’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한동안 ‘민국’이라는 임정의 연호도 썼다. 결국 헌법기초위원회에서 표결 끝에 ‘대한민국’ 안이 17표, ‘고려공화국’ 안이 7표, ‘조선공화국’ 안이 2표, 그리고 ‘한국’ 안이 1표가 나왔다. 1919년 대한민국 건국설을 주장하는 측은 대한민국이 이미 수립됐다면 국호는 왜 새삼스럽게 토의했는지 대답해야 한다.

임정 업적은 제헌헌법에 또렷이

상하이임시정부가 정식 국가가 아니면서도 독립투사들이 26년 동안이나 ‘대한민국’의 깃발을 들고 악전고투를 벌인 일은 민족사에 찬연히 빛나는 업적이다. 제헌헌법이 임정의 법통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한 이상 정식 국가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다. 1948년 건국이론을 부인하는 이 중에 현재의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인하는 좌파와 동조세력이 많은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들의 주장대로 대한민국이 1919년에 수립됐다면 평양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국가보안법과 관계없이 어김없는 반역집단이 된다. 그들은 왜 평화공존이니 민족공조니 하면서 북한 정권을 싸고도는가. 정부는 건국시기에 관해 상식과 현실에 맞는 입장을 확고하게 견지해야 한다.

남시욱 언론인 세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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