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척 코어, 마빈 클로스 지음·박영록 옮김/388쪽·1만3000원·생각의나무
남아공 혁명의 씨앗 ‘수용소 축구’
악명 높은 로벤섬 감옥의 정치범들,1969년 9개 팀 리그 시작… 주마 현 대통령도 뛰어
이야기는 196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남아공 정부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를 앞세워 수많은 사람을 정치범으로 만들었다. 그들을 수용한 곳이 로벤 섬 감옥이었다. 나라 곳곳에서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하던 사람들이 한곳에 모인 것이다. 만델라, 월터 시술루 등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지도자는 독방 구역에 갇혔다.
특별한 소일거리가 없던 수감자들은 비누조각으로 주사위를 만들거나 종잇조각으로 카드를 만들어 게임을 했다. 나뭇조각으로 체스 말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간수들은 이런 놀이거리를 파괴하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았다.
수감자들은 국제적십자사를 비롯한 여러 경로로 자신들의 요구를 전달했고 1967년 12월 초 마침내 매주 토요일 30분 동안 축구하는 것을 허락받았다. 그들이 얻어낸 것은 축구 경기 이상이었다. 수감자들은 자기 일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을 회복했고, 다른 여러 가지 문제에서도 저항할 힘을 비축하게 됐다.
경기는 매주 토요일 열렸고, 관중은 직접 만든 깃발을 흔들며 응원가를 부르기도 했다. 축구는 수감자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들은 경기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창의력을 발휘했다. 골대는 널빤지와 섬의 해안으로 떠밀려온 그물로 만들었다. 구두 수선공으로 일했던 재소자는 타이어 샌들 밑바닥을 자르고 못질해 스파이크 비슷한 것을 만들어냈다. 수감자들은 끊임없이 노력하며 경기 계획을 짰고, 무언가를 조직하는 법과 협상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리그 체계를 만들었다.
축구팀은 곧 9개로 늘어났다. 레인저스, 벅스, 핫스퍼스, 다이나모스, 마농FC…. 1968년 2월 초 그들은 ‘마카나’라는 이름으로 축구협회를 결성했다. 훈련과 운동장 정비, 응급치료와 경기 일정 조율 등을 맡는 위원회도 뒀다.
1969년 12월 드디어 첫 시즌이 시작됐다. 회색빛의 잔인한 수용소는 축구로 활기가 넘쳤다. 축구는 인간적 차원에서 많은 간수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기 시작했다. 교도관들은 축구선수들에게 관대해졌고, 특정 팀을 은근히 응원하기도 했다. 축구는 이처럼 또 다른 기적을 낳았다.
월드컵이 남아공에서 열리는 올해 번역돼 나온 이 책은 드라마 같은 이야기 속에 많은 시사점을 담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자주적인 의사 결정, 공동체 정신, 협력과 단결로부터 나오는 힘…. 이 책의 원제목 ‘단순한 게임 그 이상(More than just a game)’처럼 로벤 섬의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 이상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