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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인철]‘광우병 광풍’ 지금은…

입력 | 2010-01-25 03:00:00


광우병 파동이 잠잠해진 지난해 2월 8일 경기지방경찰청은 병이 들어 일어서지 못하는 젖소, 이른바 다우너(downer) 소 41마리를 10만∼20만 원씩에 사들여 불법 도축한 뒤 시중에 내다 판 유통업자 2명을 구속하고, 도축업자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재판에 회부돼 지난해 6월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수원지법 형사6단독 송중호 판사는 “기립불능 젖소를 도축해 가정, 학교, 식당의 식탁에 오르게 함으로써 국민의 먹을거리에 엄청난 불신과 불안감을 가져왔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와 제도 변화로 인한 추가시간과 비용도 막대하다”고 판시했다. 특히 송 판사는 “광우병 파동 속에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들을 가볍게 처벌한다면 앞으로 국민의 먹을거리와 관련해 반복되는 범죄들을 피할 수 없다”고 꾸짖었다.

광우병 파동 6개월 뒤에 국내에서 실제 국민건강 위협사건이 적발됐는데도 촛불시위 때 서울 광화문과 청계광장을 무법천지로 만들었던 단체들 가운데 정부에 안전관리 대책을 촉구한 곳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국인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94%로 높다며 ‘국민건강’을 그토록 걱정하던 목소리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되돌아보면 MBC ‘PD수첩’이 2008년 4월 29일 ‘긴급취재-미국산 쇠고기, 과연 안전한가’를 방송한 뒤 ‘광우병 광풍’의 중심지였던 서울 광화문 도심은 3개월 동안 무정부(無政府) 상태나 다름없었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금방이라도 광우병에 걸릴 것처럼 과장하는 바람에 10대 여중생들까지 촛불을 들고 시내로 쏟아져 나왔다. 국민 건강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정부의 서투른 쇠고기 협상과정에 화가 난 시민도 적지 않았지만 밤마다 서울 도심을 점령하고 공권력을 무력화한 사람들은 대부분 전문시위꾼들이고 ‘보이지 않는 손들’이었다.

미국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인 함재봉 박사는 최근 내놓은 ‘광우병 괴담의 정보적 특성 연구’ 보고서에서 “광우병 파동은 PD수첩이 만든 악성 정보가 바이러스처럼 사회 전반을 전염시켰기 때문”이라며 “아고라 등 인터넷은 ‘미국산 쇠고기=광우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결사(結社)를 간편하게 해준 도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들이 진짜로 국민 건강을 위협할 만한 사건에 정작 침묵하는 것은 ‘미국’ ‘반미(反美)’라는 흥행 촉매제가 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2008년 9월 중국산 멜라민 파동으로 전 세계가 떠들썩했을 때도 시민단체들은 잠잠했다. 아마 미국산 제품에서 멜라민이 나왔다면 또다시 전국이 뒤집어졌을지 모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문성관 판사가 정운천 전 농수산식품부 장관 등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PD수첩 제작진에게 20일 모두 무죄를 선고한 뒤 법원과 검찰의 대립이 심해지고 있다. 2심 재판에서 1심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일단은 더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작 일반 국민의 반응은 의외로 조용한 것 같다. 국민 시각에선 누가 재판에 이기고 졌느냐보다도 2008년 그 난리를 쳤던 주장대로라면 지금쯤 광우병 환자가 나왔을 법도 한데 의아할 것이다. 결국 순진한 국민만 선동에 놀아난 셈이다. 지금 청계광장에는 언제 그런 광풍이 있었냐는 듯 이글루 체험을 하려고 자녀 손을 잡고 나온 시민들의 발길만 이어지고 있으니 아이러니 아닌가.

이인철 사회부장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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