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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되어준 직장… 둘째 가질거예요”

입력 | 2010-01-25 03:00:00

‘직장보육시설의 행복’ 서울메트로 강용호 씨 가족

회사에서 어린이집 직영… 아빠가 출근길에 맡겨
부모 마음 알아준 직장 덕에 엄마도 하고싶은 일 시작




 아빠와 딸의 즐거운 대화는 출근길 내내 계속됐다. 서울메트로 강용호 승무원과 여섯 살 난 딸 민이가 7호선 도봉산역 개찰구를 함께 통과하고 있다. 강 씨는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곳이 생기면서 둘째도 가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영하의 날씨에, 차가운 부슬비까지 내리던 20일 오전 8시 반 서울 도봉구의 강용호 씨(40)네 집. 여섯 살 민이가 하얀색 털 귀마개를 엄마에게 내밀었다. 엄마는 민이에게 귀마개를 씌우고 노란색 아기 곰이 그려진 목도리를 단단히 둘러줬다. 털장갑은 물론 부츠를 신기고, 앙증맞은 핑크색 우산까지 손에 쥐여주자 민이가 아빠에게 눈짓을 했다. 준비가 다 됐다는 신호다.

아빠는 “허허”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부녀는 집을 나섰다. 아이와 함께하는 출근길이 시작됐다.

5분 정도 걷자 7호선 도봉산역이 나왔다. 전철을 타고 수락산역을 지나 마들역에 내렸다. 다시 10분간 걸었다. 서울메트로 창동차량기지가 나타났다. 부녀의 목적지는 이 기지 안에 있는 창동어린이집이다. 서울메트로가 직영하는 직장보육시설이다.

교실 앞에 도착하자 민이는 아빠 입에 ‘쪽’ 소리가 날 정도로 뽀뽀를 했다. 그러곤 이내 블록 장난감에 시선을 주었다. 강 씨는 서둘러 일터로 향했다.

4호선 동작역이 강 씨의 일터다. 전철 차량 안내방송을 하고, 안전하게 모두 승차했는지를 점검하는 게 그의 일이다. 동작역에서 첫 차량을 탄 뒤 하루 종일 오이도역과 당고개역을 오간다. 업무를 마치면 다시 어린이집에 가서 민이와 함께 집으로 향한다. 야근할 때는 아내가 민이를 데려온다.

서울메트로가 직영하는 창동어린이집에는 민이처럼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다. 42명의 아이 가운데 30명이 그렇다. 민이처럼 인근 도봉구나 노원구에 사는 아이들이 주로 오지만, 경기 의정부나 양주에 사는 창동차량기지 근무자들의 아이들도 있다.

직장보육시설을 이용하기 전까지만 해도 민이 육아는 엄마가 도맡아야 했다. 민간 시설에 아이를 맡길 때도 간혹 있었지만 비용도 비쌌고 불안감도 컸다. 엄마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아빠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2008년 10월 직장보육시설을 처음 이용했다. 민간 어린이집 비용의 거의 절반 수준인 월 11만4600원만 내면 되니 경제적으로도 이득이다. 그러나 더 좋은 점은 따로 있다. 어떤 어린이집은 영양사도 없이 교사나 원장이 메뉴를 정한다. 그러나 창동어린이집은 차량기지에서 일하는 영양사가 어린이집 메뉴까지 담당한다. 인스턴트식품이 나오는 적은 없고 열량까지 계산된 음식이 나온다. 임선영 어린이집 원장은 “간식 메뉴나 견학에 이르기까지 부모들이 좀 더 편안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전한다”고 말했다.

육아에서 ‘해방’된 엄마는 그렇게도 바라던 일을 하게 됐다. 민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을 이용해 학습지 보습교사 일을 시작한 것이다. 가계 사정도 덩달아 넉넉해졌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빠의 출근 시간이 길어진 것은 부담이다. 그러나 강 씨는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다고 말했다.

강 씨 부부가 꼽는 가장 큰 장점은 가정이 화목해졌다는 것이다. 출퇴근길을 아이와 함께하면서 강 씨는 아이의 장단점을 속속들이 알게 됐다. 민이도 아빠를 꺼리지 않는다. 아이와의 심리적 거리가 그만큼 가까워진 것. 직장보육시설 때문에 누릴 수 있게 된 행복이다. 강 씨는 “육아가 엄마의 몫이라는 것은 틀린 생각이다”며 “중요한 것은 일과 가사를 병행할 수 있는 직장 분위기다”고 말했다.

지난해 강 씨 부부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민이의 동생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보육 문제가 지금처럼만 해결된다면 아이를 굳이 낳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저출산 문제로 사회가 시끄러운데, 직장보육시설이 좋은 해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출근 부담 등 일부 단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제대로 운영되는 직장보육시설만큼 부모의 마음을 알아주는 복지 서비스는 없을 겁니다.” 강 씨의 말이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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