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정문을 통해 본 1980년 통폐합 상황야당 성향의 비판적 언론신군부 우호적회사로 통폐합64개社 → 18개社로 줄어각서 거부땐 신변 위협“언제든 허가 취소” 협박도社主들 항거불능 상태서 서명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7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대회의실에서 ‘1980년 언론사 통폐합 및 언론인 강제해직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명춘 조사3국장, 이영조 위원장, 김준곤 상임위원. 김재명 기자
○ “정부 비판 언론은 통폐합 대상”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결정문에 따르면 신군부는 1980년 4월 언론사 동향 파악을 시작해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사를 통폐합 대상으로 선정했다. 진실화해위는 결정문에서 “신군부는 방송 공영화와 방송 신문의 재벌 운영 금지를 명분으로 했지만 계엄 해제 이후를 대비해 야당 성향 언론사를 골라내 신군부에 우호적인 언론사로 통폐합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음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광고 로드중
언론사 경영진에 포기 각서를 받아오는 것은 당시 보안사 대공처 수사관들의 몫이었다. CBS 담당 수사관이었던 장병화 씨는 “당시 내가 ‘왜 우리(대공처)에게 악역을 맡기느냐’며 항의했더니, 누군지 기억은 안 나지만 ‘이는 정책적 결정이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서 정책적으로 결정한 것이니까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반응이었다”고 진술했다.
○ “경영상 불이익 주겠다” 협박
언론사 경영진은 정권이 요구하는 대로 각서를 쓰지 않으면 경영상 더 큰 불이익을 주겠다는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서울경제신문 노승관 총무국장은 “당시 한국일보를 다른 신문사와 통합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러한 압박 때문에 고 장강재 한국일보 회장이 어쩔 수 없이 서울경제를 포기한 것이다”라고 진술했다.
CBS 상무를 지낸 박형규 목사는 “당시 CBS 사장이었던 고 김관석 목사로부터 직접 각서 작성 시 보안사 직원이 ‘우리는 언제든지 CBS를 허가 취소할 수 있습니다’라고 협박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광고 로드중
○ 신변 위협도 이어져
경영진에 각서를 요구하면서 신변의 위협을 가하는 공포 분위기도 조성됐다. 동양통신 대주주였던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은 “물리적인 폭행은 없었다. 다만 내가 불려간 곳은 보안사 지하실이었으므로 방 안의 분위기는 소름끼치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보안사 요원이 들어오더니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은 말을 안 들어 의자를 빼버렸더니 엉덩방아를 찧더군요’라고 위압하였다”고 진술했다.
당시 마산문화방송 신한일 대표이사는 “마산문화방송 주식을 환수 조치 당했다. 보안사 수사관들이 군홧발로 허벅지를 밟고 욕설을 했고, ‘욕 좀 봐야겠다’며 지하실로 끌고 가 의자에 묶어 두고 심문을 했다”고 진술했다.
충주문화방송 고 유호 사장은 ‘삼청교육대 백서’ 피해자 증언에서 “충주문화방송 사장으로 재직 중 삼청교육대에 끌려가서 3주간 교육을 받고 석방됐다. 언론통폐합 조치의 일환으로 당시 독립 법인으로 운영되던 21개 문화방송을 강압적으로 공영화하기 위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나를 희생양으로 이용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결정문은 “조사 결과 언론사 사주들에게 통폐합 조치를 거부할 수 없고 이를 거부하면 신변의 위험이 있을 것이라는 취지의 협박이 있었고, 사주들은 신변의 위해 및 사회경제적으로 파탄에 이를 수 있다는 공포심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보안사의 요구를 수용하게 됐다”고 밝혔다.
광고 로드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