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방송 강탈 당시 상황보안사, 방송 포기 강요김상만 회장 각서 거부하자 “동아일보 존립 자체 위험”한국일보와 강제 합병‘동국신문’ 만든다는 설까지보상도 제대로 안해“기자재 가격만 주겠다”영업권 등 무형자산 무시18일만에 졸속 감정평가41억 헐값에 동아방송 강탈
○ 동아방송, 순화조치 필요하다
결정문에 따르면 1979년 12·12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신군부는 이듬해 정권 창출을 위해서는 언론통제가 필요하다며 언론통폐합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신군부는 자신에게 우호적인 언론사와 비판적인 언론사를 나눠 통폐합 대상을 정했다. 진실화해위는 결정문에서 “신군부는 동아방송이 정부 주도의 방송 공영화를 위해 통폐합이 필요하며 야당성 보도 성향 때문에 순화조치가 필요하다고 봤다”고 밝혔다. 동아방송은 1964년 6월 ‘앵무새’ 프로그램 관련 간부 6명이 연행돼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되는 등 정치 상황과 관련해 비판 보도를 이어가다가 정권의 탄압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5년 뒤 간부 6명은 모두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다. 신군부는 동아방송 등 비판적인 언론사는 통폐합하는 반면 서울신문은 정부시책 홍보지로, 경향신문은 이념홍보지로, 방송은 정부 홍보매체로 집중 활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 동아방송 내놓으라고 협박
국군보안사령부는 1980년 11월 14일 오후 6시경부터 통폐합 대상인 언론사 대표들을 소환해 언론사를 포기하는 각서를 쓰도록 강요했다. 당시 김상만 동아일보 회장과 이동욱 사장은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보안사 지하실로 소환됐다. 당시 동아일보 담당 수집관 윤승호 씨는 “보안사로 안내하는 과정에서 언론사 대표들을 기망하였음은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그때 각서 징구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거짓말이기는 했지만 나의 경우에는 임무수행을 위해서 할 수 없이 그렇게 한 것뿐이다. 당하는 입장에서 강제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진실화해위에 진술했다.
보안사의 집요한 강요에 김 회장은 “혼자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며 거부했다. 보안사 요원들은 “동양방송 등 다른 방송사들도 각서를 이미 썼다” “각서를 거부하면 나갈 수 없다”는 등 강압과 회유를 거듭했다. 당시 보안사 직원들은 권총을 차고 착검을 하고 있었고, 신군부의 방침을 거부할 경우 수사 등 법적처리를 한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었다. 이 사장은 “성명불상의 보안사 직원이 포기각서를 작성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하면서 은근히 이를 거절하면 회사나 나의 신상이 해로울 것이라는 태도를 취했다. 직접적인 폭행을 당한 것이 없다는 것이지 당시의 분위기는 협박적이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당시 동아일보 담당 수사관 홍성경 씨는 “나는 동아일보사의 김상만 회장과 이동욱 사장을 담당하게 되었다. 두 분은 ‘우리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며 각서 작성을 거부하였다. 이에 ‘쓰지 않으면 안 된다. 빨리 쓰고 나가시라’고 설득을 했고, 각서작성이 되지 않자 다른 요원이 들어와 왜 늦느냐고 다그친 사실이 있다”고 진술했다. 홍 씨는 “각서 징구에 순순히 응하지 않아 조그만 방송국 하나를 내놓지 않으면 모체인 동아일보 본지의 존립 자체가 위험하고 두 분의 명예도 치명적으로 손상되는 불이익이 닥칠 것이라는 취지로 얘기했다”며 “강압으로 느끼고 각서를 쓴 것이라고 생각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는 비상계엄하에 국회가 해산되고 정관계 및 언론계 인사들이 체포되는 초법적 상황이었다. 동아일보가 언론통폐합과 관련해 진실화해위에 제출한 답변서에 따르면 김 회장과 이 사장은 두 시간여 동안 각서 작성 요구에 불응했으나 각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동아일보에 어떠한 위해가 닥칠지도 모른다는 강박감에 휩싸여 ‘동아방송 허가와 관련한 일체의 권한과 기자재를 포기하고 이를 KBS에 양도한다’는 각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강압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후 동아방송 양도 무효 확인 청구소송 과정에서 법원도 인정했다.
○ 동아일보 없애고, ‘동국신문’ 만들겠다
이번 진실규명을 통해 전두환 정권이 “동아일보와 한국일보를 통폐합하겠다”며 동아일보 경영진을 압박한 사실도 드러났다. 당시 이원홍 KBS 사장은 “동아일보가 불응할 경우 동아일보와 한국일보를 합병하여 동국신문으로 만든다는 소문을 들었다. 동아일보를 없앤다는 이야기까지 듣고 있었고 여러 가지 말이 나돌았다”고 진술했다. 당시 송수항 동아일보 총무국장과 민응식 현 동아일보 기획위원은 “보안사에서 은근히 동아방송을 포기하지 않으면 동아일보 자체를 통폐합하겠다는 협박을 했기 때문에 김 회장이나 이 사장도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진술했다.
○ 진실화해위, 피해자 구제 권고
전두환 정권은 언론통폐합 과정에서 기자재 가격만을 주고 통폐합한다는 계획 아래 언론사에는 사전에 정한 인수액을 수용할 것을 강요했고, 통폐합이 마치 언론사의 자유의사에 따라 시행되는 것처럼 홍보해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를 은폐했다. 동아방송은 모든 권리와 재산을 41억여 원에 넘겨주었으며 사원 239명이 KBS로 옮겼다. 이 매각은 미처 동아일보의 주주총회 결정을 거치지 못했다. 민 기획위원은 “보안사가 개입하여 영업권 등 무형자산에 대해서는 보상받지 못하였다. 1차 감정 평가는 18일간으로 정상적인 평가를 했다고 볼 수 없다”고 진술했다.
동아일보는 1990년 11월 정부와 KBS를 상대로 동아방송 양도 무효 확인 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 재판부는 포기 각서 작성 당시 강박이 있었음은 인정하면서도 비상계엄이 해제돼 헌정질서가 회복된 1981년 이후 동아일보사가 강박에 벗어났고, 이로부터 3년 이내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효가 끝났다고 판단했다. 동아일보는 대법원 상고에 이어 헌법소원 심판도 청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논평] “동아방송은 강제 폐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