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후직이 죽어서도 간언한 태도는 ‘논어’ ‘衛靈公(위령공)’의 이 章에 나오는 史魚와 닮아 있다. 사어는 衛(위)나라 대부로 이름은 추(추)였다. 사관으로 있었고 字(자)가 子魚였으므로 사어라고 부른 듯하다. 사어는 평소 어진 거伯玉(거백옥)을 등용하지 못했고 불초한 彌子瑕(미자하)를 물리치지 못했다고 자책해 왔다. 그래서 임종 때 유언하기를 빈객의 자리에 殯所(빈소)를 두지 말고 시신을 창문 아래에 두라고 했다. 위나라 靈公(영공)은 조문을 왔다가 곡절을 알고 나서는 크게 뉘우쳤다고 한다. ‘孔子家語(공자가어)’에 이야기가 나온다. 尸身(시신, 屍身)으로서 군주에게 간언할 정도였으므로 공자가 그의 곧음을 칭찬한 것이다.
直哉史魚는 감탄문으로 주어와 술어가 도치되어 있다. 邦有道는 나라에 도가 행하는 올바른 시대, 邦無道는 나라에 도가 행하지 않는 혼란스러운 시대를 말한다. 如矢는 剛直(강직)하기가 화살처럼 곧다고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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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