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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이야기]直哉라 史魚여 邦有道에 如矢하며 邦無道에 如矢로다

입력 | 2010-01-05 03:00:00


신라 진평왕은 사냥 때문에 정사를 소홀히 해서 병부령 金后稷(김후직)이 간해도 듣지 않았다. 김후직은 병으로 죽게 되었을 때 신하로서 왕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했으니 내가 죽거든 왕이 사냥 다니는 길목에 묻으라고 세 아들에게 유언했다. 그 후 진평왕이 사냥을 나가는데 길가 숲에서 사냥을 하지 말라고 호소하는 소리가 들렸다. 김후직의 간언임을 알게 된 진평왕은 크게 뉘우쳐 국사에 힘쓰게 되었다고 한다.

김후직이 죽어서도 간언한 태도는 ‘논어’ ‘衛靈公(위령공)’의 이 章에 나오는 史魚와 닮아 있다. 사어는 衛(위)나라 대부로 이름은 추(추)였다. 사관으로 있었고 字(자)가 子魚였으므로 사어라고 부른 듯하다. 사어는 평소 어진 거伯玉(거백옥)을 등용하지 못했고 불초한 彌子瑕(미자하)를 물리치지 못했다고 자책해 왔다. 그래서 임종 때 유언하기를 빈객의 자리에 殯所(빈소)를 두지 말고 시신을 창문 아래에 두라고 했다. 위나라 靈公(영공)은 조문을 왔다가 곡절을 알고 나서는 크게 뉘우쳤다고 한다. ‘孔子家語(공자가어)’에 이야기가 나온다. 尸身(시신, 屍身)으로서 군주에게 간언할 정도였으므로 공자가 그의 곧음을 칭찬한 것이다.

直哉史魚는 감탄문으로 주어와 술어가 도치되어 있다. 邦有道는 나라에 도가 행하는 올바른 시대, 邦無道는 나라에 도가 행하지 않는 혼란스러운 시대를 말한다. 如矢는 剛直(강직)하기가 화살처럼 곧다고 한 말이다.

‘憲問(헌문)’에서 子路가 군주 섬기는 도리에 대해 묻자 공자는 “속이지 말고 군주의 안색을 범하면서까지 간해야 한다(勿欺也而犯之)”고 했다. 史魚는 그 전형이었다. 오늘날의 단체나 조직에서 如矢의 강직함이 더욱 요청된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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