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월드컵 앞둔 허 정 무 대표팀 감독
한국축구대표팀 허정무 감독(오른쪽)과 부인 최미나 씨가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래마을 자택에서 포즈를 취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부인을 끔찍하게 아끼기로 유명한 허 감독은 “아내는 가장 든든한 후원자다. 어려울 때 항상 내 옆을 지키며 힘을 줬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정해성, 김현태, 박태하 코치 가족과 함께 스키를 즐기다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린 제야의 종 타종 행사에 참여한 뒤 다시 합류했다.
허 감독은 “가정이 편해야 대표팀도 잘된다”고 강조한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몸소 실천한다. 한국 축구가 지난해 무패 행진을 벌이며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룬 원동력이다.
6월 열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도 가족의 힘을 앞세워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이루겠다는 각오다.》
“가화만사성… 부인들 헌신적 내조가 큰 힘
선수들도 서로 돕고 희생하는 플레이 펼쳐야
한때 직설적 표현 너무 강해 오해사기도
내가 바뀌니 선수들 더 분발 팀워크도 살아나”
○ 내조가 한국 축구의 힘
허 감독은 지산리조트에서 코칭스태프 부인들에게 “여러분, 올해는 월드컵이 있어 힘든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여기저기서 말이 나올 겁니다. 남편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안에서 도와주세요. 그래야 한국 축구가 성공합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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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가정은 시끄럽기 마련입니다. 서로 입장만 강조하다 보면 견해차로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임이 실제 큰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정이 편해야 모든 일이 잘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올해는 더욱 그렇습니다.”
○ 대표팀도 한가족
‘진돗개’로 불리는 허 감독은 예전엔 표현이 직설적이었다. 카리스마가 너무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달라졌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듯, 듣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좀 직설적으로 말했어요. 전달 방법이 아주 미숙했던 거죠. 마음은 안 그런데…. 요즘엔 지시형보다는 의문형으로 따라오게 만듭니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순 있어도 강제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속담대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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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감독은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내놓을 수 있듯, 선수들도 희생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팀이 무엇을 해주길 바라기보다는 팀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라”고 자주 말하는 이유다. 가족끼리 서로를 위해야 가정이 편안하듯 대표팀에서도 서로를 위하는 플레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과거 월드컵을 살펴보면 원정 때 제대로 된 플레이를 하고 온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국제무대에 출전한다는 중압감이 선수들의 마음을 짓눌러서 그렇게 된 것이죠. 그래서 선수들에게 겁먹지 말고 승패를 떠나 신나게 축구를 하고 오자고 말합니다. 우리만의 플레이로 흥겹게 경기를 하다 보면 승리는 따라올 겁니다. 팬들도 열광적으로 축구를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 협회와 연맹은 한가족
“대표팀이 잘나가는 것에 대해 어느 축구인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최근 대한축구협회와 한국프로축구연맹의 미묘한 갈등으로 행여 월드컵을 그르칠까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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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허정무 감독은:
○ 생년월일=1953년 12월 29일
○ 가족 관계=부인 최미나 씨(58), 재영(29)-은(26) 자매
○ 선수 경력
△포지션=미드필더, 공격수
△소속팀=영등포공고-연세대-한국전력-해군-PSV 에인트호번(1980∼83년)-울산 현대 호랑이(1984∼86년)
△대표 경력=청소년 대표(1973∼74년), 국가대표(1974∼86년)
△A매치 통산 성적=87경기 30득점
△주요 참가 국제대회=1973년 아시아 청소년대회, 1978년 방콕 아시아경기(우승), 1984년 아시안컵, 1986년 멕시코 월드컵,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우승)
△PSV 에인트호번 기록=네덜란드 1부 리그 77경기 11득점(1980∼83년), 네덜란드 FA컵 8경기 1득점, 유럽 클럽컵 8경기 1득점(UEFA컵)
○ 지도자 경력
△국가대표팀=코치(1991년, 1993∼94년, 2004∼2005년), 감독(1995년, 1998∼2000년, 2007년∼)
△프로팀=포항 아톰즈(현 포항 스틸러스) 코치(1991∼92년), 포항 아톰즈 감독(1993∼95년), 국가대표팀 감독(1995년·브라질 평가전), 전남 드래곤즈 감독 (1996∼98년, 2005∼2007년)
○ 지도자 수상 경력
△축구협회(FA)컵 최우수 지도자상=1997년, 2006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선정 5월의 감독=1999년
△AFC 올해의 감독=2009년
목 디스크로 고생하던 허 감독 부인 최미나 씨
작년 4월 북한전 끝난 뒤 “여보, 나 내일 수술해”
“글쎄 어떻게 알았는지 스포츠동아에서 전화가 왔지 뭐예요.”
1980년 6월 24일 27세의 허정무는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으로 떠나기 전 방송인 출신 최미나 씨와 비밀 약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스포츠동아(1978년 창간돼 1988년 폐간된 스포츠전문 주간지. 2008년 3월 일간지로 재창간)의 한 기자가 확인 전화를 하는 바람에 모든 언론에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최고 스타플레이어와 최고 인기 방송인의 결혼은 큰 관심사였다. 당초 허 감독은 약혼만 하고 결혼은 미루려고 했는데 모든 국민이 알게 됨에 따라 한 달도 되지 않은 7월 18일 결혼식을 올리고 네덜란드행 비행기에 올랐다.
허 감독은 부인 최미나 씨를 끔찍하게 아낀다. 1978년 방송인이자 연세대 선배인 최동철 씨의 소개로 만난 최 씨는 허 감독의 든든한 울타리였다. 잘나갈 때나 못 나갈 때나 언제나 옅은 웃음을 띠며 허 감독을 도왔다. “약혼식 하기 전까지 네덜란드에 간다는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어요. 이제 어쩔 수 없겠지라는 느낌이 들었을 때 말했더니 한 마디 불평도 없이 순순히 받아들였어요. 너무 고마웠습니다. 당시 한국전력 선수였던 저의 월급은 10만5000원이었습니다. 아내는 훨씬 많은 돈을 벌고 있었죠. 내가 돈은 없지만 막노동을 해서라도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프러포즈했더니 ‘무슨 소리냐. 막노동을 하는 일은 없어야지 않느냐. 우리 열심히 살자’며 결혼해줬어요.”
아내 자랑은 팔불출이라는 소리를 듣지만 허 감독은 개의치 않는다. 최 씨와 결혼한 이유에 대해 허 감독은 “당시 최동철 선배의 집에서 처음 만났는데 인기인임에도 부엌에 들어가 일을 돕는 등 싹싹한 모습이 좋았다”고 말했다.
“아내는 가장 든든한 후원군이죠. 제가 어려울 때마다 항상 옆을 지켜줬어요. 그저 말없이 제 옆에 있어주기만 해도 큰 힘이 됐습니다.”
최 씨의 내조 중 유명한 일화 하나. 지난해 4월 1일 열린 북한과의 월드컵 최종 예선. 이전까지 북한과 4경기 연속 무승부로 주위의 비난이 쏟아지는 상황. 최 씨는 다음 날 목 디스크 수술을 받기로 돼 있었지만 허 감독에게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남편이 마음 편히 경기에 임해야 한다”는 게 이유. 최 씨는 허 감독이 북한을 1-0으로 꺾은 뒤에야 “여보, 나 내일 수술해”라고 말했다. 허 감독은 “한때 보증을 잘못 서 가계가 휘청거리기도 했지만 아내의 내조로 잘 극복했다”며 껄껄 웃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