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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이야기]旣而曰, 鄙哉라…

입력 | 2009-12-16 03:00:00

삼태기 멘 은자가 이윽고 말했다. “비루하다, 잗단 소리여. 나를 알아줄 이가 없거든 그만둘 뿐이다.
물 깊으면 옷 벗고 건너고 물 얕으면 바지 걷고 건넌다고 하지 않았던가.”
공자가 말했다. “과감하구나. 그런다면 세상에 어려울 것이 없으리라.”




세상을 과감하게 잊고 은둔하는 것을 果忘(과망)이라고 한다. ‘논어’ ‘憲問(헌문)’의 이 章에서 나왔으니, 790호에 이어진다. 공자의 경쇠 연주를 들은 荷(괴,궤)者(하궤자·삼태기 멘 사람)는 그 音色에서 ‘마음에 품은 것이 있음’을 간파했다.

한참 듣고 있다가 그는 “소리가 잗달아 융통성이 없구나.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면 물러나 그만두면 되지 않나. ‘시경’에도 ‘물 깊으면 옷 벗고 건너고 물 얕으면 바지 걷고 건넌다’고 하지 않았나”고 내뱉었다. 그 말을 들은 공자는 “세상 잊음이 과감하구나. 그런 식이라면 세상에 어려울 것이라고는 없을 것이다”고 하여 자신은 그럴 수 없다는 뜻을 말했다.

旣而는 ‘이윽고’다. 鄙는 鄙陋(비루)로, 공자가 세상에 대해 戀戀(연연)해 한다고 비평한 말이다. 갱갱은 바위 두드릴 때 나는 소리, 교정청본은 경경으로 읽었다. 莫己知也는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면’이다. 斯已而已矣의 斯는 접속어, 而已矣는 결단의 어기사다. ‘深則(려,여), 淺則揭’는 ‘시경’의 ‘匏有苦葉(포유고엽)’편에 나온다. 강가에서 연인을 기다리는 사람의 심경을 드러낸 말인데, 변화에 융통성 있게 대처함을 뜻하는 비유어로 쓰였다. 果는 果斷, 果敢이다. 末之難矣는 ‘그것은 어려움이 없다’로, 末은 無와 같다.

선인들은 果忘을 하지 않았다. 도가 실현되지 않아 벼슬을 그만두어도 현실 공간에 남아 부조리를 바로잡으려고 했다. ‘논어’의 가르침에 충실했던 것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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