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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바로가기] 형은 ‘작두’, 동생은 ‘해머’…형제 대장장이
서울에 아직도 전통 대장간이 남아있다.서울 모래내 수색역에 위치한 ‘형제 대장간’. 변변히 앉을 의자 하나 없는 10평 도 채 되지 않는 이곳은 류상준(56)·상남(52) 형제가 뜨거운 화덕 앞에서 쉴 새 없이 메질을 하며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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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까지 형제는 주로 농기구를 제작했다. 지금은 농기구를 찾는 고객이 거의 없다. 간간히 단골고객에게만 제작을 해주고 있다. 하지만 좁은 대장간은 각종 농기구들로 가득 차있다. 호미, 곡괭이, 낫, 도끼 등 민속촌에서 볼 수 있는 물건은 다 있다. 요즘은 각종 농기구 대신 공사장이나 건축을 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를 만들고 있다. 얼마 전 북한의 개성공단 건설에 필요한 도구를 2000여 개나 주문 받아 납품했다. 또 역사드라마 속 소품을 제작하느라 정신이 없다. 대장금, 태왕사신기 등의 작품에 등장했던 농기구나 무기가 이들에 의해 제작 됐다. 대장간은 옛 시골 장터나 큰 마을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었다. 떠돌이 대장장이도 간간히 눈에 뜨였다. 하지만 논농사가 기계화되고 농기구 생산도 자동화 되면서 대장간은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이들은 ‘전통대장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이들은 “우리는 그래도 먹고 살만 해요. 우리나라에 몇 곳 남지도 않은 대장간을 보면 일거리가 너무 없어요. 중국 제품들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경쟁력도 없고요. 전통적인 방식에 의해 제작하는 곳은 거의 없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들이 하나하나 만든 물건은 그 수명이 수십 년이나 된다. 이들은 “중국산 제품보다 가격이 서너 배가 비싸지만 손에 감기는 편안함이나 쇠의 강도 등은 비교할 수도 없다”고 자부했다.
‘형제 대장간’은 철도청 부지로 올 3월 자전거 보관소로 탈바꿈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갈 곳이 없는 형제는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다른 곳에 대장간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메질 소리로 인한 소음 때문에 터를 내주는 곳이 없었다. 이들은 “당장은 버틸 때까지 버텨볼 예정이에요. 하루하루가 불안하죠. 그런데 누굴 탓 하겠어요. 세월이, 시간이 이렇게 됐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쇠 메질 소리가 끊이지 않는 도심 속에서 40여 년을 지켜온 두 형제의 대장간, 그 안에서 2500도의 불을 지피고 쇠를 만지는 두 대장장이는 “이 일은 내 ‘천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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