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대 서정욱 교수가 연구실에서 자신의 철학 저서들을 꺼내놓고 저술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지명훈 기자
상수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현장학습을 간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손을 들고 “저는 지난주에 갔다 왔는데요”라고 말한다. 슬아도 “5학년 때 갔다 왔는데…”라고 불만이다. 선생님은 “학교에서 고민 끝에 한 결정”이라며 반 전체에 “현장학습 가기 싫으냐”고 묻는다. 상수와 슬아의 불만은 “아니오”라는 대부분의 학우 대답에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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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교수는 ‘철학 이야기꾼’이다. 5쇄를 넘기며 최근 중국어 출판까지 확정된 이 철학동화 시리즈 100권 가운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탈레스, 홉스, 밀, 화이트헤드, 푸코 등 14권이 그의 작품이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에서 ‘인식 논리학과 인식 형이상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전공의 영역이 그리스 철학에서 근세의 칸트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데다 탁월한 스토리 구성 능력 때문에 많은 부분을 맡았다.
“2002년경부터 우리 사회에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등장했어요. 일반인이 철학을 모르는데 그 이유가 있다고 보고 대중적인 철학서 집필에 나섰죠.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어린이들을 위한 철학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전까지 ‘해석학과 현대철학’ 등 전문적인 학술서만 써온 서 교수는 만화로 된 ‘서양철학사’(3권)를 펴낸 데 이어 아동철학 시리즈를 쓰기 시작했고 철학 교양서인 ‘필로소피컬 저니(Philosophical Journey)’를 집필했다. 이 가운데 푸코가 들려주는 권력 이야기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추천 청소년 권장도서로, 필로소피컬 저니는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지난해 각각 선정됐다.
서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철학 이론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칸트를 가장 좋아하고 그래서 그를 닮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시계를 맞출 만큼 산책 시간마저 규칙적이었던 칸트처럼 그도 강의를 거의 1초도 틀리지 않게 시작하고 끝낸다. 부인을 먹여 살릴 자신이 없어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칸트와 달리 결혼은 했지만 직업과 직책에 대한 책임감은 칸트만큼이나 투철하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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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교수는 “한때는 다른 철학도들처럼 안병욱, 김형석, 김용옥 같은 대중적인 철학자들을 ‘가볍다’고 치부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들의 길을 따르고 있다”며 “철학은 철학도나 전공 학자의 전유물에서 대중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